새 정부 출범 5개월 만에 임명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제 취임사에서 ‘약자 복지’를 강조했다. 취약계층 보호와 두터운 지원을 복지부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이기도 한 ‘약자 복지’를 강조한 조 장관의 취임 일성을 딱히 흠잡기는 힘들지만, 다소 아쉬운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파른 고령화·저출산으로 인해 현안으로 급부상한 연금개혁, 복지전달체계 개선, 건강보험 재정건전성 제고 등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조 장관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꼽은 ‘10대 이슈’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빠져 있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30여 년 뒤 기금이 고갈되면 소득의 35%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지적이 쏟아질 만큼 연금 개혁은 한시가 급하다. 정부가 지급해야 할 연금충당부채는 작년 말 기준 1138조원으로 국가채무(965조원)도 넘어섰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리를 걸고서라도 반드시 개혁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기초연금 문제도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소득하위 70% 노인(65세 이상)에게 월 30만원씩 지급 중인 기초연금을 노인 전원에게 40만원씩 주는 방안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서 급속 확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이 통과되면 당장 3년 뒤 기초연금에만 50조원의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마침, 조 장관은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예산·재정 전문가다. 역대 복지부 장관 중에 연금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효율적인 복지전달체계 재구축도 시급하다. 지금 같은 상의하달식 복지행정, 중앙·지방정부 간 통합서비스 결여, 전문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서는 선진복지국가는 요원하다. 한국의 자랑이던 탄탄한 건강보험도 되찾아야 한다. ‘문케어 5년’의 역주행으로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9년에 완전 소진되고, 2040년이면 누적적자가 예산보다 큰 680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까지 나와 있다. 대통령 공약에만 집중하기에는 시급한 보건복지 현안은 너무 많다. 중차대한 시기에 혹여 장관이 눈치 보기와 무사안일에 빠진다면 선진복지국가 구축의 골든타임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