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nano)는 그리스 신화 속 난쟁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한 말이다. ‘10억분의 1’ 단위를 잴 때 활용된다. 예컨대 1나노미터(nm)는 1m를 10억분의 1로 쪼갠 것이다. 머리카락 10만분의 1 두께로 광학 현미경을 써도 관찰할 수 없다. 일반인들이 다루기에 너무 작은 미진(微塵)의 세계다.
나노 개념을 처음 정립한 사람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1965년)인 리처드 파인만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였다. 그는 1959년 미국 물리학회 강연에서 “원자 세계를 다루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권을 2만5000분의 1로 축소해 직경 1.6밀리미터(㎜) 핀 머리에 기록하는 방법을 찾아오면 1000달러를 주겠다고도 얘기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방대한 정보를 담는 법에 대해 숙제를 던진 것이다.
과학자 언어였던 나노는 몇 년 전부터 일반인들의 세계로 들어왔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 2위 업체 TSMC와 삼성전자가 ‘3나노 공정 최초 양산’ 등의 문구로 기술력을 과시하면서부터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나노’ 하면 반도체를 떠올리게 됐다.
3나노미터 등의 숫자는 반도체 안에서 전자가 돌아다니는 길(회로)의 폭을 뜻한다. 회로의 폭이 좁아야 반도체 크기가 작아진다. 반도체에 트랜지스터(전류를 증폭시키는 부품)도 더 많이 넣어 성능을 높일 수 있다. 예컨대 3나노미터 공정에서 만든 반도체는 5나노미터 공정 칩보다 전력 효율이 45% 높다. 반도체의 진화는 스마트폰 같은 정보기술(IT) 기기의 성능 향상으로 이어진다. 반도체 나노 경쟁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간 반도체가 어떤 업체의 몇나노미터 공정에서 생산됐는지 살피는 소비자가 생길 정도다.
최근 삼성전자가 ‘1.4나노미터’ 공정에서 2027년부터 반도체를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1나노 기술로드맵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TSMC를 보기 좋게 한 방 먹였다는 평가다. 1.4나노미터가 끝도 아니다. 반도체업체들은 100억분의 1을 뜻하는 ‘옹스트롬’을 연구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어디까지일까. 10년 뒤엔 ‘삼성전자 5옹스트롬 공정 양산’ 같은 기사를 볼지도 모른다.
황정수 산업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