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방한 중인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회동했다. 손 회장은 이번 만남에서 삼성전자와의 전략적 협력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의 인수합병(M&A) 관련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은 지난 4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만찬을 겸한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 노태문 MX부문장(사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과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 등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이날 이 부회장에게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삼성전자와 ARM의 포괄적인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당초 일각에서 예상한 ARM 인수와 관련해 구체적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회동에서 ARM의 지분 매각이나 프리 IPO(기업공개) 등과 관련해선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이 지난 1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ARM의 M&A를 포함해 삼성전자와의 협력 가능성에 이목이 쏠렸다. ARM은 삼성전자, 애플 등 유명 반도체 기업에 IP를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업체다. ARM은 전 세계 스마트폰 칩 설계의 95% 이상을 점유하는 등 팹리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프로세서 역시 ARM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산업계에선 규제당국 승인이나 인수 자금 등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ARM을 인수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망해 왔다. 소프트뱅크는 2020년 ARM을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에 당시 주가 기준으로 400억달러(약 47조8000억원)에 매각하려 했다. 다만 영국을 비롯한 각국 규제당국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ARM의 몸값이 최대 80조~100조원까지 치솟았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럼에도 ARM은 여전히 매력적인 매물인 만큼 삼성전자가 ARM의 일부 지분을 인수하거나 SK하이닉스, 인텔, 퀄컴 등 다른 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외신에 따르면 손 회장 역시 측근에게 “삼성전자와 ARM의 전략적 협력을 논의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양사의 협상 테이블에 M&A가 다시 오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분기 창사 후 분기 기준 최대 적자를 기록한 소프트뱅크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일부 사업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서다. 삼성전자 역시 M&A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은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전자전(KES-2022)’에서 기자들과 만나 “M&A가 활성화돼야 서로 성장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