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 주가가 3일(현지시간) 재무 건전성 악화로 신용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 한때 10% 넘게 폭락했다. CS의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는 100bp(1bp=0.01%포인트)가량 치솟았다. 일각에선 CS가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리먼브러더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신호탄이 됐던 글로벌 금융회사다.
CS가 시장의 주목을 받은 건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30일 CS 경영진이 회사 재정건전성에 대해 커지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주요 투자자와 대화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다. 이는 오는 27일로 예정된 CS의 구조개혁 계획 발표를 앞두고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이에 울리히 쾨르너 최고경영자(CEO)는 주말에 직원들에게 메모를 보내 “(은행의) 자본 기반과 유동성 상황은 튼튼하다. (직원들이) 매일매일의 주가 흐름에 동요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며 불안 해소에 나섰다. 그러면서 “우리는 장기간에 걸쳐 미래에도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CS를 재편하는 중”이라고 했다.
CS 주가는 최근 수년간 재정건전성 우려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투자자 빌 황이 벌인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사태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CS였다. 당시 손실 규모는 최소 47억달러(약 6조8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CS가 구조 개편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규모 자본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쾨르너 CEO의 메모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3일 스위스 증시가 열리자마자 CS 주가는 장 초반 10%가량 급락했다. 오후 들어 낙폭이 5%대로 줄어들긴 했지만 시장의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CS의 5년 만기 CDS프리미엄은 지난달 30일 256bp까지 오른 데 이어 이날 한때 추가로 100bp 이상 뛰었다. CDS 프리미엄은 기업이 부도날 경우 원금을 돌려받는 대신 내야 할 일종의 ‘부도 헤지(위험회피) 수수료’다. 부도 위험이 커질수록 CDS 프리미엄이 오른다.
한 파생상품 트레이더는 FT에 “어떤 거래에선 CS의 5년 만기 CDS프리미엄이 350bp 이상으로 올랐다”며 “1년 만기 CDS 프리미엄은 이날 450bp 이상으로 치솟은 곳도 있었다”고 전했다. CS가 5년 내 파산할 위험보다 1년 내 파산할 위험이 크다고 시장에선 본 것이다.
일각에선 CS가 리먼브러더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미국 투자 자문사 스리쿠마스트래티지의 코말 스리쿠마 대표는 “이는 리먼 모먼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미 중앙은행(Fed)의 호전적인 (금리 인상) 정책이 신용 위기란 결과를 초래했다”며 “CS도 인플레이션에 관한 예측에 실패하며 현재 위기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니코애셋매니지먼트의 존 베일 수석전략가는 “최근 CS 상황을 감안하면 Fed의 기조가 궁극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며 “Fed는 인플레이션이 다소 완화하는 상황에서 금융 위험이 극적으로 치솟은 걸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