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황금거위 배를 가르자는 기아 노조

입력 2022-10-04 07:30
수정 2022-10-04 09:36
-퇴직자 평생 기아 차종 할인권의 이면

회사를 오래 다녔으니 기업은 직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래서 여러 혜택을 준다. 그 중에서 퇴직을 해도 차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배려'를 제공한다. 직원 할인도 아니고 퇴직자 할인이다. 그런데 할인율이 29.9%에 달한다. 내부에서 근무하는 일부 직원보다 할인율이 높다. 근무 기간에 따라 할인율이 다른데 20년 이상 장기 근속 후 퇴직이라는 점에서 최고 할인율을 적용해준다. 더불어 혜택 기간은 사망할 때까지다.

차를 살 수 있는 기간은 매 2년이다. 새 차를 사서 2년 후 중고로 되팔고 다시 새 차를 29.9% 할인에 살 수 있다. 그런데 할인율이 워낙 높아 구입 2년 후 중고차로 되팔아도 돈이 남는다. 3,000만원짜리 새 차를 할인된 2,100만원 정도에 구입하고 2년 운행 후 중고로 되팔아도 처음 구입한 금액보다 높은 금액을 받는다. 일반 소비자 시각에서 보면 2년 간 무료 사용이다. 그래서 차를 2년 마다 바꾸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 이런 방식으로 자녀에게 주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차를 뽑아준다. 물론 아직 그렇게까지 하는 사례는 별로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인구 고령화로 수명이 증가하자 혜택을 받는 사람도 급증한다. 쉽게 보면 사망할 때까지의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75세로 한정하자는 제안이 들어갔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살아 있는 한 끝없이 새 차를 29.9% 할인 받을 수 있어서다. 심지어 본인이 명의만 소유할 뿐 운전은 '누구나'로 열어 놓고 엉뚱한 사람이 운행하기도 한다. 혜택이 조금씩 변질되는 사례가 생겨나는 셈이다.

지금처럼 수명이 늘어나고 퇴직자가 사망할 때까지 혜택을 받을 때 회사가 선택 가능한 방법은 물량 제한이다. 국내 공급 전체에서 일정 수준만 퇴직자 대상으로 공급하는 방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판매의 상당 물량이 할인된 가격으로 퇴직자에게 돌아가고 기업은 결국 수익 악화를 겪게 된다. 더불어 일반 소비자는 정상 가격으로 새 차를 사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퇴직자 비용 부담은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례는 지난 2009년 GM 사례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당시 GM이 불가피하게 파산을 신청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금의 기아 퇴직자 혜택과 비슷한 GM 퇴직자 평생 의료보험료 부담이었다. 30년 이상 근속한 퇴직자와 가족에게 연금 및 의료보험을 사망할 때까지 제공했는데 의료 기술 발전에 따른 수명 연장으로 해당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GM이 판매하는 자동차 가격은 경쟁사보다 1,500달러 비쌌다. 여기서 1,500달러가 퇴직자 의료보험료 부담액이다. 혜택을 도입한 때는 크게 부담이 없었지만 대상 인원이 매년 꾸준히 늘어 2009년 보험 헤택 인원은 110만명에 달했고 연간 부담액은 56억 달러, 한화로 8조원에 도달했다. 높아진 제품 가격은 일본 및 한국차와 경쟁에서 약점으로 작용해 결국 판매 부진으로 연결됐다. 파업을 막기 위해 들어줬던 퇴직자 평생 혜택이 끝내 회사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던 셈이다.

지금의 기아 퇴직자 신차 할인 혜택은 GM의 과거 퇴직자 의료보험 평생보장과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혜택이 계속될 경우 결국 기아도 조금씩 부담액이 커져 결국 제품 가격 경쟁력 약화 및 판매 부진에 처할 수 있어서다. 실제 2009년 GM 노조는 퇴직자 의료보험 지원금 감면과 평생 혜택 중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현직 근로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퇴직자 혜택을 위해 현직 근로자가 파산이라는 고통을 겪은 셈이다. 그래서 기아 퇴직자 혜택은 현직, 그리고 앞으로 기아에 들어올 미래 근로자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곧 퇴직할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말라고 하니 참으로 씁쓸하다. 훗날 기업이 위기에 처하고 혜택이 완전 사라질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의 나'는 안된다는 것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60세에 퇴직하고 75세까지 할인 구매를 적용하면 2년마다 최대 7~8대를 바꿀 수 있다. 평균적으로 4년에 한번 바꾼다 해도 4~5대에 달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내놓은 '고령운전자 연령대별 교통안전대책 합리화 방안'에 따르면 70세 이상부터는 교통사고도 급증한다. 70세 미만까지 위험도는 별 차이가 없지만 70세가 넘으면 급격하게 위험도가 증가한다. 그래서 운전면허 자진반납도 70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다시 말해 퇴직자가 자동차 운행이 필요한 기간은 할인 혜택이 충분히 제공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퇴직자 새 차 구입 연령 제한을 반대한 기아 노조를 보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말이 떠오른다.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 훗날은 모르겠고 일단 배를 갈라 황금을 나눠 갖자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다. 며칠 전 기아 퇴직자를 가족으로 둔 지인의 말이 아직도 귀에 오래 남는다. 퇴직자에게 새 차 구매를 부탁했는데 돌아온 답은 '자네는 순번이 아직 아니니 2년 후에 사줄게'였다고 한다. 개인 퇴직자에게 준 혜택이 서서히 변질돼 간다는 방증이라 씁쓸하기만 하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