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지역화폐, 대대적 개편 시급하다

입력 2022-10-02 17:35
수정 2022-10-03 00:10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서 6000억원의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소상공인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1996년 ‘내고장 상품권’이라는 이름으로 강원도가 처음 발행했으나 지역화폐 발행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국고 지원으로 지역화폐 발행이 급속도로 확대돼 현재는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가 도입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종합대책 중 하나로 지역화폐를 대폭 증액해 발행했고, 이를 중앙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돼 2021년엔 지원예산이 1조522억원에 이르렀다.

지역화폐는 사용처를 지역 내 소상공인 소매점으로 제한함으로써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외부지역으로 유출되는 소비를 지역 내로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역화폐는 도입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부작용을 야기했다.

첫 번째 부작용은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moral hazard)다. 경제학에서는 제도 변화에 대한 경제주체의 대응으로 야기되는 부작용을 도덕적 해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보험 가입자가 화재 보험에 들고 난 뒤 화재 예방을 소홀히 해 화재 발생 위험이 오히려 증가하는 것이 한 예다. 지금의 지역화폐 예산은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경제 규모와 재정 여건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보조하고 있다.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자체를 중앙정부가 도와주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보조해주기 때문에 먼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가 예산의 임자가 되는 모양새다. 더구나 발행 및 판매 대행 수수료는 지자체가 부담하기에, 오히려 재정 여건이 양호한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더 많이 발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연의 취지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둘째, 최근 실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역화폐가 소매업 전체 매출을 증가시킨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및 빅데이터 센터에서 제공하는 기업등록부의 전국 사업체 전수데이터를 이용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송경호·이환웅 연구원의 보고서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지역화폐 발행이 소매업 전체 매출을 증가시키지 못했다. 강창희 중앙대 교수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강지원·김성아 연구원이 노동경제논집(2022)에 발표한 ‘지역화폐가 지역의 고용에 미친 연구’에 따르면 지역화폐 발행이 해당 지역의 고용 규모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셋째, 명칭으로 인한 오해다. 지역화폐는 엄밀한 의미에서 화폐가 아니라 상품권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은행만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고, 화폐 발행을 통해 발생한 수입(흔히 말하는 주조수입)은 국고에 귀속된다. 즉, 지역화폐는 화폐가 아니라 세금을 사용해 발행하는 상품권이다. 상품권에 법적 근거가 없는 ‘화폐’라는 명칭을 부여해 혼동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백화점이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이 자유듯이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지역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보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미 법정화폐가 있는 상황에서 지역화폐라는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은 추가 비용이 수반된다. 지역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필요한 비용이 액면가의 9%에 이른다고 한다. 즉 1억원어치의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유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약 900만원이다. 9%의 세금이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낭비된다. 더구나 한국은행권은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지역화폐는 재유통이 불가하다.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자체를 중앙정부가 도와주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다만 지원 근거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굳이 필요 없는 비용이 수반되며, 실질적인 소비 진작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현재의 제도는 부분적 수정을 하기에는 너무 부작용이 많아 보여 폐지 또는 대대적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통해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자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제도로 대체하는 것이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