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처럼 보험 상품에도 빅테크 비교·추천 서비스를 허용하겠다는 금융당국 방침에 보험설계사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 설계사 단체는 이번주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빅테크의 보험시장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물론 과거 산업혁명 당시 수공업 노동자들이 벌인 기계 파괴 운동(러다이트 운동)처럼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고 소비자 효용만 떨어뜨릴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거리로 나선 설계사들, 5일 대규모 집회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혁신금융서비스(금융 규제 샌드박스) 지정을 통해 보험 비교 플랫폼을 시범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위는 당초 이달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했지만, 아직 신청 접수 절차조차 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 추천 알고리즘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이해관계자 간 협의가 좀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보험업계는 ‘생존권’을 내걸고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한 보험설계사는 “코로나19 타격과 고령화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45만여 명 설계사들의 삶의 터전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손해보험 전속설계사의 월평균 소득은 2019년 299만원에서 작년 256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생명보험 설계사 소득도 336만원에서 323만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손보 설계사 비중은 26.2%에서 35.7%로 늘었다.
2003년 방카슈랑스 도입 이후 현재까지 약 20년 동안 생명보험 설계사 수는 60%가량 감소했다. 보험 비교 플랫폼 도입도 방카슈랑스 못지않은 충격이 예상된다는 게 보험설계사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한 보험산업의 고용유발효과는 매출 10억원당 14.8명으로 제조업(4.9명)이나 일반금융(5.6명)보다 높은 만큼 일자리 정책 측면에서도 보험 비교 플랫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보험대리점협회는 지난 8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300여 명 규모의 반대 집회를 연 데 이어 오는 5일엔 광화문광장에서 규모를 5000여 명으로 늘려 2차 집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이 같은 대규모 집회는 2016년 저축성보험 비과세 축소 철회 대회 이후 6년 만이다. “대세 된 디지털 기술, 소비자 편익 높여”반면 빅테크 측은 대세로 자리 잡은 디지털 혁신을 거스르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반박한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보험은 다른 금융상품보다 불완전판매 비율이 높고, 손해보험업계의 경우 10여 년째 회사 순위에 변동이 큰 만큼 경쟁이 실종된 상태”라며 “플랫폼에서 다양한 보험 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면 소비자 편익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연령이나 건강상태, 생활습관 등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주면 정보 비대칭성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위는 지난 8월 종신·변액·외화보험 등 상품 구조가 복잡하거나 불완전판매 우려가 있는 상품은 플랫폼 취급 범위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보험대리점 업계는 플랫폼 허용이 불가피하다면 자동차보험과 장기보험 등을 서비스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의무보험에다 1년마다 갱신하는 자동차보험은 설계사들의 주 수입원이고, 이미 비대면 판매 비중이 50%에 달해 소비자 불편도 크지 않다”며 “보장 내용이 복잡한 장기인보험 등도 온라인 판매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소비자 효용이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빅테크의 플랫폼 파워가 커지면 결국 소비자의 수수료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보험 상품 비교도 보험협회가 운영 중인 ‘보험 다모아’ 사이트 등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다고도 강조한다.
금융위는 빅테크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해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나 특정 보험사에 편중되는 구조를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보험 비교·추천이나 플랫폼 사용에 따른 수수료도 합리적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빅테크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상품이 아닌데도 설계사가 자신의 판매 수수료를 늘릴 목적으로 보험 상품을 추천하는 폐단이 사라질 것”이라며 “플랫폼뿐만 아니라 중소형 보험사 입장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장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