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겨울이 겁난다’는 말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유럽연합(EU) 독일 등의 정치 수반들의 말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불만의 겨울’이 초래할 세계질서 붕괴 가능성을 말했다. 벌써 7개월째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온 경고의 말들이다. 안정적이던 유럽의 전략 지형 붕괴나 동서 냉전 재발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 등은 서방세계 분열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무릇 정치가들은 모든 여건 변화를 자신의 정치적 이득 관점에서 해석한다. 물론 일부 언론이나 자칭 전문가들이 이를 인용·과장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가장 대표적인 일부 ‘헛된’ 주장은 러시아가 이번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사실 올해 러시아 가스 수출은 전년 대비 절반 이상 감소했지만 평균 수출가격이 두 배나 올라 단기 이득은 여전하다. 여기다 석유 수출(특히 아시아 지역)도 증가했다. 러시아의 올해 에너지 수출은 지난해에 비해 30%쯤 늘 것 같다.
그러나 이를 성공으로 간주할 수 없다. 향후 국가 신뢰와 시장의 동반 상실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장기 생산능력 확충에 큰 지장이 올 수 있다. 러시아의 미래 석유·가스 생산 중심은 대륙붕, 극지 등 척박한 생산 여건을 가진 곳이 대부분이다. 서방의 기술과 서비스 제공이 그 개발에 필수적이다. 특히 향후 러시아 가스 수출은 액화천연가스(LNG)가 주축일 것이다.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선 서방 지원 없이는 안 된다. 이런 판국이니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청정에너지 개발은 뒷전이다.
여기에다 러시아의 시장 분석이 객관적이지 않다. 국제 석유·가스 시장 동향은 글로벌 시장 논리에 따라 푸틴의 전략처럼 장기간 비관적일 수만은 없다. 한때 배럴당 120달러를 넘던 국제 유가는 이제 80달러 수준이다. 공산품 공급망 위기와 식량, 비료, 전략광물 등의 수급 차질도 점차 호전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자율 큰 폭 인상(0.75%포인트)과 러시아 푸틴의 징집령 발동이 동시 발생했으나, 미국의 시장 논리에 따라 국제 유가는 5%쯤 하락했다. 확전을 통해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던 푸틴의 전략이 시장의 힘에 눌린 셈이다. 이러니 EU의 러시아 석유 수출가격 상한제와 첨단기술 수출 규제가 시행되면 유가는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작 때의 가격 수준(배럴당 90달러대)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이번 겨울 유럽에 혹독한 추위가 없다면 ‘난방비용 조달을 위해 끼니를 건너뛴다’는 에너지 빈곤 걱정도 없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우크라이나 미궁에서 벗어나 ‘보다 강력하고 새로운 중동’의 출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그리고 서방 금수 조치로 가장 크게 이득을 본 것은 중동 산유국들이다. 그들은 올해만 유가 상승으로 약 3조5000억달러의 초과 수익을 거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극화한 세계질서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 수출국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스라엘과는 ‘아브라함 협약’으로 평화 체제를 이뤘다. 1970년대 석유파동 원인을 아예 제거한 셈이다. 특히 러시아가 중국 인도 등 동쪽 시장을 확대함에 따라 공백이 생긴 유럽시장 확장 이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산유량을 하루 1300만 배럴에서 1600만 배럴로 확대했고, 카타르는 세계 LNG 시장의 33%를 점하고 있다. 이런 호황은 2045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까지 초과 이득을 신재생·청정기술에 투자해 또 다른 에너지 강국 건설을 꿈꾸고 있다.
지나고 보니 1970년대 석유파동은 자원 민족주의와 선·후진국 간 힘의 균형을 가져왔다. 그 결과는 에너지 효율 강화, 원자력 발전 도입,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열기 등 에너지 구도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떤 새로운 에너지 시장 구도를 마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