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죽음의 곁에 있는 12가지 직업…산 자들에게 죽음을 묻다

입력 2022-09-30 17:47
수정 2022-10-01 00:55

열두 살 소녀 헤일리 캠벨은 친구 해리엇의 죽음을 겪는다. 친구는 개울에 빠진 반려견을 구하려다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캠벨은 성당의 기다란 의자에 앉아서 하얀색 관을 바라보며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애쓴다. 하지만 알 길이 없다.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어른도 없었다. 어른이 된다 해도 죽음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내가 저번에 죽어봤더니 말이지…” 하고 말해줄 사람은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은 훗날 기자가 된 캠벨이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을 취재해 쓴 책이다.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기자는 해답도 사람에게 있다고 믿거나 희망한다. 나는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캠벨은 가디언, 와이어드, GQ 등에 글을 싣는 저널리스트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매일 곳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전 세계에서 매시간 평균 6324명이 사망한다. 하루 평균 15만1776명, 매해 5540만 명이 죽는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6개월마다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의미다.”

수많은 죽음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산 사람들이 필요하다. 부검 전문가, 사형 집행인, 화장장 기사…. 보통의 사람들이 죽음 이야기를 금기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것과 달리, 매일 죽음을 대하는 직업들이다. 캠벨은 12가지 죽음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일터에서 만났다.

이들이 직업을 택한 이유는 다양하다. 예컨대 영국 런던의 장의사 포피의 직전 직장은 세계 2대 경매회사 중 하나인 소더비였다. 전 세계 예술품을 수집하고 경매를 진행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보지도 못할 조각과 그림을 수없이 접했다. 어느 날 부모님이 갑자기 건강을 잃자 그는 자신이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인류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장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각자 원하는 죽음과 작별 모습이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금기가 워낙 강하다 보니 결국 천편일률적인 장례 의식을 치른다. 그렇게 장의사가 된 포피는 최대한 유족과 고인의 뜻을 존중하며 영안실을 운영한다. 유족들이 원하면 훼손된 시신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하고, 시신에 불필요한 방부처리는 하지 않는다.

죽음과 관련한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한다. 시신을 거둬들이고, 부검하거나 방부처리하고, 수의를 입혀 화장하는 이 철저한 분업의 과정은 책을 통해 한자리에 모인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거창한 정의를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취재하겠다고 수천 ㎞를 날아가 놓고 해부용 시신 앞에 가까이 다가가기를 머뭇거린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책은 죽음을 처리하는 여러 과정을 담담하게 전할 뿐이다. 독자는 자연스레 죽음의 의미,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하게 된다. 미국 미네소타주 메이오 클리닉의 해부 책임자인 테리가 그런 사례다. 테리는 의학 목적으로 기증된 시신인 ‘카데바’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의사들은 안면 이식 수술을 연습하기 위해 100구의 시신에서 얼굴을 떼내고 서로 바꿔 꿰맸다. 테리는 의사들의 연습이 끝난 뒤 ‘안 해도 그만’인 일을 했다. 뒤바뀐 얼굴들을 모두 원래 시체로 되돌려준 것이다.

“하지 않아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얼굴 살에는 뼈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화장한 뒤 다른 사람의 유골함에 들어갈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 그는 그저 묵묵히 한다.” 이미 죽었고, 곧 사라져버릴 신체라고 해도, 그들이 여전히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테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쓰고, 읽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금기시하면 삶에 대해 아주 일부만 말할 수 있다. 최근 늘어난 ‘존엄사’ ‘연명치료 거부’ 등의 논의는 생사 두 측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하게 한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묻힌 것들을 드러낸다. 죽음 후에 일어나는 일을 보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기를 거부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