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태풍 힌남노가 지나가며 큰비가 내렸습니다. 많은 곳은 시간당 200mm까지 내리면서 한동안 전국이 습한 날씨를 보였습니다. 기자가 사는 곳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차량 운행을 한참을 못하다가 주말께 아내의 차에서 물건을 꺼내기 위해 지하 주차장을 갔습니다. 차문을 열었더니 퀴퀴한 냄새와 후덥지근한 열기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차 안은 지하 주차장보다 더 습한 느낌이었거든요. 룸미러에 뽀얗게 작은 물방울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시선이 조수석에 닿았을 때는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카시트에 정체불명의 하얀 털들이 자라있었습니다. 카시트 곳곳에 곰팡이가 핀 것이죠. 일부 길게 자란 부분의 길이는 4~5cm가 될법했습니다. 기껏해야 일주일가량 차를 지하 주차장에 뒀을 뿐인데, 그 대가로 치기에는 너무 심했습니다.
카시트 관리를 아예 하지 않던 것은 아닙니다. 세균을 없앤다며 엄마들 사이에 유행하는 피톤치드 스프레이를 틈틈이 뿌려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니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동안 방심하고 있었구나' 싶어 반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자동차 시트는 겉을 쓸어주는 정도로만 관리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카시트도 비슷한 수준으로 관리했던 것이죠.
놀라움도 잠시였습니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독자들에게 '카시트'에 대해 알려드려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카시트에서 22만 마리의 세균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식중독과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도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아이들은 카시트에 앉아 과자를 먹기도 하고, 잠을 자며 침을 흘리기도 하니까요. 곳곳을 만진 손을 카시트에 문지르기도 합니다. 세균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카시트를 차에서 꺼내고 털어냈습니다. 카시트는 손세탁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을 대부분 하다보니 손세탁이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욕실에서 카시트를 빨기에 다른 집안일로도 바쁘니까요.
특히나 이번에는 곰팡이가 많이 피고 오염이 심한 것 같아 전문업체에 맡길까 싶었습니다.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업체별로 제각기 카시트를 완전히 분해하고 식물성 세제와 스팀 세척, UV 살균 등의 절차를 거친다고 자세하게 나와 있더군요. 요즘은 세탁 단계별로 사진을 보내줘 신뢰감을 주는 곳들도 있었습니다.
업체들의 세탁 과정 설명을 보며 점차 '역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커졌지만, 최종 결정은 내리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비싼 세탁 가격 때문입니다. 카시트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업체들은 세탁 비용으로 대략 5만~8만원 정도를 요구했습니다. 여기에 수거·배송비가 따로 붙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카시트 한 번 세탁하는데 심하게는 10만원 가까이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카시트 가격이 40만원대인데, 세탁비가 10만원이라니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빠 차와 엄마 차에 각각 카시트가 설치됐고 디럭스 유모차와 휴대용 유모차도 하나씩 있다면 총 4개를 맡겨야겠죠. 그럴 경우 저렴한 업체를 찾더라도 20만~30만원이 듭니다. 분기별로 맡긴다고 하면 연간 100만원에 육박하는군요. 계산하다 보니 전문업체에 맡겨야겠다는 생각은 접게 됐갔습니다. 전문 업체에 맡겨 한 번 꼼꼼하게 세척하는 것도 좋지만, 집에서 자주 세척해주는 게 아이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선배맘들의 블로그와 카페글을 찾아볼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이 없으면 시간과 노력을 해야겠지요. 집으로 옮겨온 카시트 커버를 벗겨내니 과자 부스러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청소기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살균 티슈로 꼼꼼하게 닦아줬습니다. 곰팡이가 올라온 벨트도 중성세제를 묻혀 벅벅 문지른 뒤 스팀청소기로 열심히 곰팡이의 뿌리까지 제거하니 카시트 프레임은 제법 말끔한 모습이 됐습니다. 그늘에서 말려준 뒤 볕이 잘 드는 곳에 일광소독을 하면 카시트 프레임은 마무리입니다.
프레임을 닦으며 땀을 냈더니 카시트 커버를 조금 더 쉽게 세탁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카시트 커버는 내부에 얇은 판과 같은 플라스틱 부품이 들어있고, 거칠게 다루면 섬유도 손상될 수 있기에 손세탁이 일반적이지만, 물을 잔뜩 먹은 카시트를 깨끗하게 빤다는 일이 쉽진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내 한 카시트 제조사에게 문의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단독 손세탁이 바람직하지만, 세탁기 울세탁 코스를 사용하면 심한 손상 없이 카시트 커버를 세탁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카시트와 유모차 커버를 세탁 망에 담고 중성세제를 넣어 울세탁 코스로 돌려봤습니다. 세탁기에 돌아가는 카시트를 보며 플라스틱 부품이 무사할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몇 년 사용하고 나면 폐기할 제품이라 다소간의 섬유 손상은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받쳐주는 부품들이 깨지면 당장 사용할 수 없게 되니 말입니다.
시간이 지난 뒤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얼룩 하나 없이 말끔해진 것은 물론, 세탁기로 인한 손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도 자주 카시트를 빨아줄 수 있겠다 싶더군요. 유모차 커버 역시 별다른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만 세탁기 제조사에서는 제품 소재와 세탁 방법을 확인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울코스와 섬세의류(아이 옷)코스가 섬유 손상을 줄이는 세탁기 사용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카시트의 경우 소재가 다양하기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카시트 중에는 방수 소재들이 꽤 있습니다. 이를 세탁기에 넣어 빨면 방수 기능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제조사 관계자는 "유모차나 카시트 등은 소재가 다양하기에 세탁기 사용을 무조건 권하기 어렵다"며 "제품별 세탁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