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17억 번 40대 직장인…"잠실아파트 하나 사려고요"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입력 2022-10-01 07:00
수정 2022-10-01 09:58


“국가부도가 시작됐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능하거나, 무지하거나! 저는 그 무능과 무지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여기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청년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주일 내로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고 단언하며 자신을 믿고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리를 떠나고 남은 건 단 두 명. 이들은 은행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이것’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미합중국의 달러였습니다.

청년의 예상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증시가 급락하고 원화 가치는 폭락했습니다. 달러를 사들인 이들은 불과 1주일 만에 2배를 훌쩍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다음 행선지는 부동산 중개업소. “최근에 아파트 매물 많이 나왔죠? 그거 모아놓으세요. 집값이 10~15% 더 떨어지면 제가 다 사들이겠습니다”


“원?달러 환율 1500원도 열어둬야”2018년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외환위기를 기회로 ‘인생과 계급’을 바꾼 남자 윤정학(유아인)의 스토리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최고 1962원을 찍기도 했습니다. IMF 구제금융 이전 환율이 800원대였음을 감안하면 무서운 폭등이었습니다.

20여년 전 위기 상황과는 다르지만,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걷잡을 수 없이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28일엔 장중 달러당 1440원을 넘으며 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심리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킹달러’ 현상입니다. 금융 전문가들은 “달러당 1450원 돌파는 시간문제이고 1500원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강달러가 오면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등 신흥국 주식을 팝니다. 환율만으로 앉아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연일 52주 신저가를 찍으며 5만원대 초반까지 밀린 것도 외국인들이 투매한 영향이 큽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비중은 최근 50%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작년 초 ‘9만전자’ 시기 고점에 투자했던 동학개미들은 40%대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킹달러 방패’ 든든한 서학개미반면 미국 주식에 투자한 서학개미들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코스피처럼 나스닥지수 역시 지난해 고점 대비 30% 조정받았는데 무엇이 다른 걸까요. 바로 강달러로 인한 환차익이 주가 하락 손실을 일부 방어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소 책과 유튜브를 통해 달러 투자를 강조한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해외 자산에 일정 비율 투자하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며 “기축통화인 달러는 위기 시에도 안전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서학개미 투자 비중 1위 테슬라 주식을 예로 들겠습니다. 테슬라 주가는 지난해 11월 4일 409.97달러(주식분할 전 1229.91달러)가 전고점이었습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주가는 268.21달러로 고점 대비 35% 하락했습니다. 이를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어떨까요. 작년 11월 4일 환율은 달러당 1185.5원(하나은행 일별 시세)으로 테슬라 한 주당 약 48만6000원입니다. 지난 29일 환율은 달러당 1434원으로 한 주에 약 38만5000원입니다. 원화로 계산한 테슬라 손실은 21%에 그쳤습니다. ‘킹달러’가 14%포인트의 손실을 막아준 셈입니다.

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계산입니다. 수익률이 수백%에 달하는 테슬라 장기 투자자에겐 작금의 ‘고금리?고환율’ 환경이 손실 방어를 넘어 자산 ‘바겐 세일’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묘사한 것처럼 최근 원?달러 환율과 금리가 오르자 집값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슬라 투자자가 지금 집을 산다면서울 잠실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A씨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A씨는 2019년 6월 말부터 테슬라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당시 초기투자금 8000만원(원?달러 환율 1156원)을 들여 4500주(현재 2회 분할 기준?당시엔 300주)를 주당 15달러 선에 매수했습니다.

A씨가 테슬라 투자를 결심한 것은 내 집 마련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잠실동 잠실엘스 아파트에 2016년에 전세금 8억을 주고 들어왔습니다. 당시 33평형(전용 109~112㎡) 매매가는 약 10억원 선. 아내가 대출을 끼고 구입하자고 했지만, A씨는 ‘고작 아파트 한 채에 10억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집값은 3년 만에 8억원이 뛰었습니다. 2억원이었던 갭(매매가와 전세가 차이)이 10억원으로 벌어진 것입니다.



A씨는 허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테슬라의 미래를 보고 과감히 여윳돈을 베팅했습니다. 3년 뒤 A씨의 테슬라 수익률은 무려 1688%(29일 종가 268.21달러 기준)입니다. 초기 투자금 6만7500달러가 120만달러로 불어났습니다. 강달러로 환차익도 짭짤합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17억3000만원입니다. A씨는 절세도 잊지 않았습니다. 2년 전 평가액이 6억원으로 불어나자 양도소득세(수익의 22%)를 줄일 목적으로 아내에게 테슬라 주식을 모두 증여했습니다.

현재 A씨는 3000주가량 매도해 11억5000만원을 수익 실현할 생각입니다. 양도세 1억원을 내고 현재 전세금 10억원을 합쳐 잠실엘스 집을 매수하려고 합니다. “최근 실거래가도 19억5000만원까지 내려왔더라고요. 작년 고점 대비 30% 가깝게 빠졌으니 기회라고 봅니다. 부동산중개소에 19억원 정도 매물이 나오면 사겠다고 할 생각입니다”


“달러자산 보유자, 주택 매수 기회”만약 A씨가 작년 11월 전고점 부근인 400달러(분할 전 1200달러)에 테슬라 주식을 팔아서 집을 샀다면 어땠을까요. A씨는 총 180만달러, 원화로 21억3300만원(달러당 1185원 기준)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금 파는 것보다 4억원 더 이득입니다.

그러나 주가의 고점 시기는 집값도 고점이었습니다. 작년 11월 잠실엘스 33평형 실거래가는 26억원이 넘었습니다. 이달 시세보다 6억원이 높습니다. 전고점에 주식을 팔고 집을 샀다면 오히려 돈이 더 들어간 셈입니다. 주식 양도세와 주택 취득세 등 세금 부담도 더 컸을 겁니다.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저자 박종훈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산을 지켜낸 이들에게 경제위기는 바겐세일과 같은 기회를 제공해왔다”며 “달러 예금 등의 자산에 꾸준히 투자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전합니다. 금융 격변기 어떤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26일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국민들이 ‘달러 사재기’를 한다고 쓴소리를 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경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달러 사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많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에 나선 국민들이 이번에는 외국인보다 더 맹렬하게 달러를 사들이기 바쁘다. 내국인이 자국 통화 약세에 베팅하는 길이 쉽고 무제한으로 열려 있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에 함축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달러를 사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영화 ‘국가부도의 날’ 마지막 장면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은 마치 관객에게 말하듯 읊조립니다 “위기는 반복됩니다. 또 당하지 않기 위해선 잊지 말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세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세요”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