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구 의원, 20년 된 여의도 '산은 건물' 걱정한 까닭 [오형주의 정읽남]

입력 2022-09-28 16:30
수정 2022-09-28 16:36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 본점 건물의 노후화가 심각해 종합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산은 건물이 지어진 지 20~25년이 지나 공조설비 등 시설 개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 것인데요.

보도자료는 산은이 2020년 발주한 본점 노후화 진단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건축 설비설계 업체인 한일엠이씨는 그해 12월 ‘한국산업은행 본점(본관·별관) 노후화 진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산은에 제출했습니다.

노후화 진단 용역은 여의도에 있는 산은 본관과 별관을 대상으로 실시됐습니다. 2001년 준공된 산은 본관은 지하 4층, 지상 8층 규모로 연면적이 9만9839㎡에 달합니다. 여의도공원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여의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로 꼽히는 건물입니다. 2002년에는 서울시 건축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5년 준공된 별관은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로 연면적은 3만5996㎡입니다. 별관 건물은 원래 옛 정책금융공사 사옥으로 쓰였다가 나중에 산은과 통합하면서 산은 별관이 됐습니다.

용역업체는 산은 본점의 냉·난방 및 공조·환기 등 기계설비와 변압기 등 전기설비, 소화전 등 소방설비, 오배수 등 배관설비 등을 대상으로 노후도 진단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보고서는 “산은 본점 건물이 20년 넘게 사용되면서 시설 전반적으로 노후화가 진행됐다”며 “실내 쾌적성의 저하, 운영상의 에너지 낭비 등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직원들의 호흡기 건강에 영향을 주는 공조설비와 관련해서는 “상당수 장비의 코일에서 파손 및 누수, 오염이 확인돼 보수·교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오배수 처리 설비에 대해서는 “사용연수(20년)을 경과해 설비 시스템 전반적인 노후가 진행되고 지속적인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며 “전반적인 교체가 필요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습니다.

화재 시 재난안전 설비인 ‘제연팬’에 대해 보고서는 “풍량이 정격 대비 50% 이하로 노후에 따른 성능 저하가 다소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노후 설비 교체에 드는 비용으로는 본관 55억3000만원, 별관 15억8000만원 등 약 71억1000만원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희곤 의원 측은 “보고서에서 양호하지만 향후 유지 및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된 사항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대폭 확대될 수 있다”며 “교체 뿜 아니라 향후 유지·관리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안하면 종합적인 대책이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당 보도자료를 접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국회의원이 갑자기 산은 건물의 노후화를 걱정하다니 좀 생뚱맞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관계자는 “여의도 산은 건물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최첨단 건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며 “이제 지어진 지 20년이 조금 넘었는데 노후화가 심각하다니 놀랐다”고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시점에 김희곤 의원이 해당 보도자료를 낸 배경이 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김 의원은 산은을 피감기관으로 삼은 국회 정무위 소속이지만, 부산 동래를 지역구로 두고 있습니다.


부산시는 현재 산은을 부산으로 유치·이전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후 정부는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시키기로 가닥을 잡고 실무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가 이달 초 김 의원에 제출한 ‘산은 부산이전 추진계획’을 보면 금융위와 산은은 연내 기본방안을 검토한 뒤 내년에 균형발전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부지매입 및 사옥 신축 등 절차를 진행할 방침입니다.

부산 이전에 최대 장애물로는 산은 직원들의 거센 반발이 꼽힙니다. 산은은 이달 초 부산 이전을 위한 사내 설명회를 열려고 했지만 노동조합의 반대에 무산됐습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이 낸 보도자료는)서울에 있는 산은 본점 건물의 노후화에 따른 직원 건강이나 비용 문제를 부각시켜 부산 이전 필요성에 힘을 실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다만 이날 김 의원이 낸 보도자료에는 산은의 부산 이전과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김 의원 측에서도 산은 건물 노후화 문제를 부산 이전과 직접 연결시키는 데엔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인데요. 김 의원의 '측면 지원'이 결실을 맺을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겠습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