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초3 시험지로 고1 평가…구멍 뚫린 '기초학력 검증'

입력 2022-09-28 10:11
수정 2022-09-28 11:30

지난해까지 경기도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기초학력진단평가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시험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경기 모든 지역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0~1%대에 불과했는데, 적절하지 않은 평가도구에 따른 착시현상이었던 것이다. 교육당국이 기초학력 진단 등을 모두 교사 자율로 맡긴 이후 기초학력 부진 현황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기초학력 부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경기의 기초학력 부진 학생 비율은 초등학생(1.36%→1.77%), 중학생(0.26%→1.86%), 고등학생(0.12%→2.13%)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경기 A지역의 기초학력 부진 고등학생의 비율은 지난해 0.07%에서 올해 14.69%로 급증했다. B지역의 기초학력 부진 중학생의 경우 지난해 0.39%에서 올해 7.74%로 늘었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이 1년 만에 갑자기 급증한 것은 올해 들어서야 중학생용, 고등학생용으로 난이도를 조정한 시험을 치렀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교육부에서 제공하고 전국 시도교육청이 사용하는 기초학력진단-보정시스템 3R(읽기·쓰기·셈하기) 평가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검사임에도 고등학교 1학년까지 사용됐다. 그런데 검사가 기초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에 교육부가 올해 들어 난이도를 조정한 새 검사지를 내놨다는 게 경기도교육청의 설명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경기는 3R 평가 결과로 기초학력 부진 학생 비율을 집계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 난이도 개편이 되면서 (그 비율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결손 등이 누적되면서 격차가 더 커진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기초학력 평가가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줄세우기 논란'에 기초학력 문제를 교사 자율에 맡기면서 기초학력 부진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기적 시험을 통해 기초학력 부진 학생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정성적으로 기초학력을 평가하고 그중에서도 일부 희망자만 3R 평가 등을 보게해 기초학력 부진 현황과 개선 추이 등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집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 자체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학습결손에도 경기의 기초학력 부진 학생 비율은 중학생 1.86%, 고등학생 2.13%로 비교적 낮다. 기초학력 부진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강원 제주 전북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이 비율은 0~2%에 그쳤다.

지난 6월 13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지난해 중3과 고1 학생들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과목별로 5.9%~14.2%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 결과로 처방을 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기초학력도 시험을 통해 정확하게 진단해야 개선 역시 가능하다"며 "일선 교사의 자율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교육청 차원의 진단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호 의원은 "기초학력은 우리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 전제 조건이고 기초학력의 보장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교육부는 체계적인 기초학력 평가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 모든 아이들이 능력에 따라 알맞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