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국내 전기차용 2차전지 배터리 소재 사업자 중 후발주자에 속한다. 배터리 소재 사업을 본격화한 것은 2020년으로 불과 3년 전이다. SK, LG, 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이 이미 배터리 소재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을 때였다.
롯데는 시장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그동안 대형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했으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했다. 이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는 글로벌 전기차 소재 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신동빈 롯데 회장(사진)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글로벌 4위 동박업체로 도약롯데케미칼은 지난 5월 일진머티리얼즈가 시장에 ‘깜짝’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1순위 인수 후보로 꼽혔다. 올초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배터리 소재 분야에 총 4조원을 투자해 연간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배터리 소재 중 동박 부문은 직접투자보다 M&A를 통한 외형 확대 방안을 검토해 왔다. 2020년 두산솔루스가 매물로 나왔을 당시 검토했으나 인수전에는 불참했다. 2차전지용 동박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음극재를 감싸는 얇은 구리막이다.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는 롯데가 단숨에 글로벌 동박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동박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은 SK넥실리스로 22%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중국의 왓슨(19%)과 대만의 창춘(18%)이 뒤를 이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13%로 4위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이 6888억원, 영업이익은 699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엔 매출 3884억원, 영업이익은 467억원이었다. 2차전지 소재 밸류체인 구축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 SK넥실리스와 동박 시장을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일 수 있게 된다. 롯데케미칼은 인수가 마무리되는 대로 해외 추가 공장 증설 등 공격적 투자를 이어갈 전망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국내에 연간 1만5000t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연간 9만t)와 스페인(연간 2만5000t)에서 생산시설을 증축하고 있다. 2025년 증축이 완료되면 연간 13만t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업계에선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한 이후 2조~3조원을 더 투입해 추가로 공장 증설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2차전지 핵심 소재 분야 밸류체인도 구축하게 된다. 롯데케미칼은 동박 외에 양극박, 음극박, 전해액, 분리막 등 2차 전지 핵심 소재를 생산하기 위해 헝가리 등에서 활발한 신규 또는 증설 투자를 하고 있다.
풀어야 할 과제는 있다. 일진머티리얼즈의 말레이시아 자회사에 약 1조원을 투자한 사모펀드(PEF) 스틱인베스트먼트와의 관계다. 스틱은 일진머티리얼즈의 해외 공장 증설과 관련한 동의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이 계획대로 설비 증설을 위한 투자에 나서려면 스틱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