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기업인 SK넥실리스에 대해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 24일 전주지방법원은 근로자 김모 씨 등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57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SK넥실리스는 전기차 리튬 배터리용 전지용 동박을 제조하는 업체다. 2020년 1월 SKC의 자회사인 에스케이씨에프티홀딩스에서 지분 100% 인수 완료하면서 사명을 KCFT에서 SK넥실리스로 변경했다. 현재 말레이시아, 폴란드, 미국에도 공장을 증설하는 등 글로벌 업체로 발돋움한 상태다.
이 회사는 구리선을 들여와(입고) 열을 가해 녹이고(용해) 구리를 약품처리해 얇게 막으로 만들고(제박) 동박을 고객사 요청에 따라 절단하고(슬리팅) 포장해서 내보내는(출하) 공정을 도맡고 있었다. 이 중 슬리팅 공정에 대해 사내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하청 업체는 계속 변경이 됐지만, 근로자들은 대부분 바뀐 협력업체에서 그대로 근무했다.
하지만 2019년 12월 31일, SK넥실리스는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종료했고 해당 하청업체는 계약 종료를 이유로 원고인 하청근로자들을 해고했다. 이에 근로자들이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청구한 것이다.
법원은 근로자들이 원청인 SK넥실리스의 직접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라고 판시했다.
먼저 재판부는 “동박 생산의 전 공정이 연속적으로 이뤄져 작업량·작업 방법·작업시간 등에서 공정별로 완전히 독립적인 업무가 이뤄질 수 없다”며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슬리팅 작업이 지연되면 출하 작업에 차질이 생기므로, 전체 공정의 흐름과 독자적인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재량이 협력업체에게 주어져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SK넥실리스의 직접 지휘·명령을 받는 등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다”고 판시했다.
회사 측은 "하청 근로자들은 슬리팅 공정만 했고 원청 근로자들은 해당 작업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으며 작업장도 원청과 분리돼 있다"고 강조했지만, 법원은 "원청 근로자들의 업무 수행 없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로만 슬리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협력업체 업무를 따로 떼어 하나의 작업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청 근로자들이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았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작업요청내역서를 3~4일 단위로 배포해 구체적인 생산계획을 지시하는 등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했다"며 "작업 현장에 원청 소속 관리자를 배치한 점, 협력업체 작업반장들은 사실상 근로자에 해당해 독자적인 권한이 없는 점, 원청 소속 관리자들이 하청 소속 근로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한 점 등을 들어 "원청의 지시는 도급인과 수급인 사이 지시가 아니라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지휘명령의 일환"이라고 했다. 원청은 하청노동자에게 업무 지시하는 과정에서 전산관리시스템(MES)와 스마트폰 메신저 앱 ‘카카오톡’을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밖에 △협력업체 대표들이 대부분 원청 퇴직자들이었던 점 △협력업체들이 SK넥실리스 외의 다른 업체를 상대로 사업을 영위한 적이 없는 점 △업체가 바뀌면 고용이 승계되는 점 등을 들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전문성이나 기술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