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팀의 자존심, 'K-브라더스'가 지켰다

입력 2022-09-26 15:48
수정 2022-10-26 00:02

세계 남자골프의 대륙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은 역시나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김시우(27)와 김주형(20), 임성재(24), 이경훈(31) 등 한국의 '용감한 사형제'는 또다른 주인공으로 남았다. 뛰어난 경기력에 화려한 퍼포먼스로 미국팀의 독주를 저지했고 마지막까지 대회를 더욱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26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 할로 클럽(파71)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에서 미국팀이 인터내셔널팀에 17.5-12.5로 승리했다. 세계1위 스코티 셰플러, 저스틴 토마스까지 '어벤저스급' 멤버로 구성된 미국팀은 2005년부터 9대회 연속 우승컵을 가져갔다. 통산 전적도 12승 1무 1패로 압도적 우위에 섰다. 세계 남자 골프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유럽의 남자 골프 대항전은 라이더컵으로 따로 열리기 때문에 프레지던츠컵의 인터내셔널 팀에는 유럽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는다. 때문에 프레지던츠컵은 태생적으로 전력의 불균형이 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팀은 패배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빛을 발했다. 임성재, 김주형이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냈고 단장 트레버 이멜먼의 추천으로 김시우, 이경훈이 합류하면서 역대 가장 많은 4명이 출전했다. 모두 CJ의 후원을 받으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선수들로 평균연령 25.5세의 젊음과 패기로 대회를 이끌었다.



활약도 역대급이었다. 매치플레이로 진행된 마지막 날 한국 선수들은 3승 1패를 기록했다. 가장 먼저 선봉에 나선 김시우는 세계랭킹 7위 저스틴 토마스(29)를 상대로 1홀차 승리를 거두며 기세를 올렸다. 경기 초반 2홀 차로 끌려가던 김시우는 15번홀에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이어진 16번홀에서 1홀 차로 앞서가는 역전극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토머스가 17번홀에서 곧바로 홀을 가져가면서 다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마지막 18번홀에서 김시우가 약 3m 거리의 버디 퍼트를 홀에 넣으면서 파를 기록한 토머스를 꺾고 귀중한 첫 승을 올렸다.

하지만 '어벤저스 군단' 미국팀의 벽은 역시 높았다. 이어진 경기에서 조던 스피스(29)와 패트릭 캔틀레이(30), 잰더 쇼플리(29)가 줄줄이 승리하며 우승에 필요한 승점 15.5점을 일찌감치 채웠다.

자칫 압도적인 패배로 끝날 수 있었던 위기, 이때 K브라더스들이 나섰다. 임성재가 캐머런 영(25)을, 이경훈이 빌리 호셜(36)을 각각 꺾으며 승점 격차를 줄였다.



앞서 사흘간 뛰어난 활약을 펼친 김주형은 맥스 호마(32)에게 아쉽게 역전패 당했지만 차세대 스타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대회 셋째날 승리를 확정 지은 뒤 모자를 바닥에 던지며 격하게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은 이번 대회 최고의 장면으로 꼽힌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이번 대회 출전 선수 24명에 대한 평점에서 "이번 주는 톰 김(김주형의 영어 이름)이 주인공이었다"며 김주형에게 인터내셔널 최고점인 A+를 줬다. 골프다이제스트는 "에너지 넘치는 흥미로운 경기를 보여준 그는 미국 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주형은 경기력과 팬들에게 어필할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이런 선수들로 인해 골프 종목의 이야깃거리가 더 풍부해진다"고 평가했다. 김시우는 A를, 임성재와 이경훈은 각각 B를 받았다.

김주형에 대한 거장들의 관심도 이어졌다. 경기를 마친 뒤 단장 이멜먼은 김주형과 포옹하며 "톰, 넌 진정한 챔피언이야. 너 자신을 믿어. 정말 훌륭했어"라고 덕담을 건냈고 프레드 커플스는 김주형과 악수하며 "내년에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에서 만나자"고 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