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내연기관 킬러로 떠오른 배출규제

입력 2022-09-26 07:23
수정 2022-09-26 07:25
-2025년 유로7 적용 앞두고 치열한 논쟁

"내연기관의 배출가스를 지금보다 더 줄이려면 그만큼 정화장치 추가 장착 및 연소기술 발전이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가격이 크게 올라 전기차 가격과 비슷할 수도 있지요. 그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얼마 전 만난 완성차기업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고민은 현재 수준과 비교해 배출가스를 90% 가량 줄이라는 유로7 규제 도입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다. 유럽 내 완성차기업은 유로7 배출규제 적용이 내연기관 일자리를 빠르게 감소시킨다며 반발하지만 유럽연합은 자동차회사 일자리를 우려해 내연기관 시대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이기주의라며 비판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 배출가스규제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초안에 따르면 2025년 적용할 유로7 배출 규제는 질소산화물을 최소 40~120㎎/㎾h에 맞춰야 하고 다른 오염물질도 대폭 줄여야 한다. 이외 아산화질소와 메탄 등의 기준도 새로 도입된다.

완성차업계는 현재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2025년까지 유로7 기준은 맞출 수 있다고 얘기한다. 폭스바겐이나 BMW 등은 유로7 규제를 이미 충족했다는 자신감도 내보인다. 하지만 추가 부품, R&D로 비용 상승이 뒤따른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을 해보니 가격이 현재 대비 20~30% 가량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향후 내연기관 판매가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이 더 올라 전기차와 동등 수준에 도달할 수도 있다.

여기서 각 제조사마다 고민이 생긴다. 엄청난 개발비를 투입해 유로7에 대응하는 것이 맞느냐 아니면 그냥 전동화로 빠르게 전환하는 게 옳은 것이냐에 대한 판단이다. 대표적으로 폭스바겐과 BMW, 벤츠 등의 독일 기업들은 내연기관 시대를 빨리 접을 수 없다는 점에서 유로7 대응을 예고한 반면 현대기아는 오히려 전동화 속도를 높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전동화 기술 향상에 투자해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내연기관의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것보다 미래전략 측면에선 훨씬 유리하다고 본 셈이다. 디젤 엔진 개발자 업무를 전동화로 바꾼 것도 현대기아의 '전기차 올인'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전기차 올인에는 배출가스 평균효율제도의 영향도 적지 않다. 효율 기준에 미달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데 이때 전기차는 효율 충족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제도가 미국의 카페(CAFE, 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Standards)다. 미국 내 판매되는 자동차의 평균 효율을 규정한 카페는 2025년까지 자동차 평균효율을 ℓ당 23.2㎞로 높이도록 돼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효율 향상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자동차회사가 기술 개발에 매진해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취지다. 그리고 제조사가 이를 맞추지 못하면 일정 기준의 거리에 따라 최대 14달러의 벌금을 부담하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효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부과하는 벌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제시했다. 0.1MPG(Miles per gallon)당 14달러인 현재 벌금을 올해부터 15달러로 높이고 2026년까지 최대 8% 더 높이자는 방안이다. 그리고 기준 적용에서 BEV는 배제했다. 한 마디로 전기차를 팔수록 효율 기준이 충족되도록 했는데 최대 수혜자는 역시 테슬라다. 반면 미국 내 빅3는 벌금이 오르면 우리 돈 1조2,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더 이상 내연기관 산업계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기준 충족을 위한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BEV 전환에 미온적이면 아예 사업을 접으라는 메시지까지 던진다. 그래서 차라리 내연기관 대응을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곳도 많다. 결국 배출가스 규제 흐름이 내연기관 시대를 예상보다 빨리 종료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이다. 내연기관의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이미 등장해 있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