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지금 주문하면 4년 뒤에나"…제조강국 日 '저스트 인 타임' 위기

입력 2022-09-25 18:18
수정 2022-10-04 16:05

‘자동차 왕국’ 일본에서 돈을 주고도 차를 못 사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부품 조달이 끊기면서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서다.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4년을 넘기는 차종까지 등장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제조 강국 일본을 상징하는 생산 방식인 ‘적기 생산(just in time·재고 최소화)’을 포기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높은 中 의존도가 문제25일 일본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도요타는 인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랜드크루저 판매를 중지했다. 지금 주문해도 4년 후에야 차를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에 2022년형 랜드크루저를 인도할 상황이 되자 도요타는 회사 평판 등을 고려해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의 LX와 NX, 닛산의 스포츠카 페어레이디Z, 혼다의 SUV 베젤도 판매를 중지했다. 모두 인도까지 1년 이상 걸리는 인기 차종들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서 차 부족 현상이 벌어진 것은 중국으로부터 부품 조달이 중단되면서다.

일본 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2021년 자동차 부품 수입액은 8194억엔(약 8조1349억원)이었다. 2000년에 비해 네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중국산 자동차 부품 수입액이 3227억엔으로 전체의 39.4%에 달했다. 태국(884억엔)과 독일(599억엔), 베트남(515억엔)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463억엔)은 일본의 여섯 번째 부품 수입국이었다.

日기업 ‘적기 생산’ 포기부품이 부족해 차를 못 만드는 경영 환경의 변화는 일본을 대표하는 생산 방식마저 바꿔놓고 있다. ‘도요타 프로덕션 시스템(TPS)’이 대표적이다. TPS를 구성하는 핵심은 ‘적기 생산’과 ‘간판 방식’이다. 적기 생산은 각 공정에 필요한 재고를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 공급해 재고를 철저히 줄이는 방식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간판 방식’을 사용한 생산 시스템이다. 앞 라인과 뒷 라인이 ‘어떤 부품을 언제, 얼마만큼 만들어서 주고받을지’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생산을 철저히 시장의 수요에 맞춤으로써 재고를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다.

재고 최소화는 일본 기업을 대표하는 생산 방식이 됐다. 기업이 재고를 얼마만큼 쌓아두는지를 알아볼 때 ‘재고자산회전기간(재고자산/월평균 매출)’이라는 통계를 쓴다. 재무성의 법인기업 통계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재고자산회전기간은 1990년대 1.2개월에서 2000년대 들어 1개월 이하로 떨어졌다.

특히 적기 생산의 원조답게 자동차 업종은 재고를 극단적으로 쌓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2019년 말 자동차 업종의 재고자산회전기간은 0.57개월이었다. 제조업 평균인 1.39개월의 3분의 1 수준이다. ‘코로나 회복’도 늦어져부품 공급이 원활할 때는 훌륭하게 작동했던 적기 생산은 글로벌 공급망이 단절되면서 한계를 노출했다. 코로나의 충격에서 급속히 회복하는 세계 시장의 수요를 일본 제조업의 생산 상황이 쫓아가지 못했다. 2020년 12월~2022년 5월 일본 자동차산업의 생산활동은 코로나 이전보다 24% 떨어졌다. 재고가 부족하다 보니 일본 제조업의 회복력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느렸다.

네덜란드경제정책분석국에 따르면 2020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제조업 상황을 나타내는 세계 광공업생산지수는 3.7% 상승했다. 하지만 일본은 1.2% 오르는 데 그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장기화와 미·중 패권경쟁으로 공급망 위기는 기업의 상시적 과제가 됐다. 이 때문에 재고 최소화의 원조 도요타마저 적기 생산 방식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도요타 자동차의 재고자산은 3조8000억엔으로 1년 만에 32% 늘었다. 일본 제조업 전체의 재고 역시 2020년 1분기보다 31% 증가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