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은 ‘스타트업 대표 출신 벤처 주무 장관’이라는 수식어와 걸맞지 않게 인문학적 발상과‘아날로그’적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디지털 시대가 자리 잡고 인공지능(AI)이 발전할수록 기업에 인간을 통찰하는 지혜와 도덕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취임 100일을 넘긴 이 장관은 이 같은 지론을 부처의 아젠다로 삼아 정책 곳곳에 반영할 생각이다. 이 장관은 지난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스타트업 서밋’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이제 기술이 똑똑함을 넘어서 슬기로운 ‘위즈덤 테크놀로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I와 같은 첨단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에 덕(德)과 기술의 결합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이어 “기술이 국가 간 양극화, 대륙 간 양극화, 계층 간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 문명이 가속화됐지만 새로운 (기술 기반의) 경제 체제로 ‘상생(相生)의 부 재창출’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위즈덤 테크놀로지 바탕의 정책으로 납품 단가 연동제 등을 꼽았다. 납품 단가 연동제는 원자재값이 급등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올려주는 제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로 중기부가 지난 9월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 장관은 “그다음 정책은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는 각종 소프트웨어 사업을 발주한 기업, 정부 부처, 공공기관 등으로부터 관련 용역을 제공한 중소기업이 적정 대가를 받는 것을 뜻한다.
이 장관은 국내 스타트업이 크기 위해서는 글로벌 빅테크, 투자사와의 네트워크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내년에는 중동에서 스타트업 투자 유치를 위한 글로벌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들이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중동이 7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는데 나만 믿고 (한국 기업에) 투자해달라고 설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이날 뉴욕대와 한국 스타트업 지원 관련 협력을 논의할 때도 뉴욕대의 중동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앞서 19일엔 미국의 구글 본사를 방문해 도널드 해리슨 구글 글로벌 파트너십 및 기업발전 부문 사장과 만났다. 이 장관은 “중기부와 구글코리아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인 ‘창구프로그램’ 대상을 딥테크 기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한국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앱 장터에서 구글의 결제 방식 강요(인앱결제)가 계속 논란이 되는 데 대해서는 “구글이 한국에서 관련 법(구글 갑질 방지법) 시행 이후 후속 조치를 했다고 하는데 확인이 필요하다”며 “영세 기업을 위해 앱 결제 수수료 요율 차등화 구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뉴욕=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