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길로 불쑥 나온 아이와 '쾅'…"민식이법이 무서워요" [아차車]

입력 2022-09-24 09:00

한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을 서행하던 중 주차돼 있던 차들 사이로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와 부딪혔다. 경찰이 '차 대 사람' 사고라는 이유로 운전자를 가해자로 지목했지만 운전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사고였다"고 호소했다.

운전자 A 씨는 최근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에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제보하며 '민식이법 무섭다. 제발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A 씨는 지난 14일 오후 6시께 정상 신호에 교차로를 통과해 편도 1차로 도로로 진입하던 중 반대 차선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들 사이로 뛰어나온 여자아이와 부딪혔다.

해당 도로는 어린이보호구역이었으며, A 씨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서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고로 아이는 발등이 골절돼 깁스를 해야했다.

이후 경찰은 A 씨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A 씨는 "규정 속도를 지켰고 항상 방어운전하고 천천히 운전했는데 이건 불가항력이었다"며 "정말 찰나의 순간이고 너무 놀라서 잠도 안 온다"고 호소했다.


A 씨의 보험사는 A 씨가 아이의 치료비를 전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민식이법 적용 여부 및 과실 비율에 대해선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

A 씨는 "이걸 대체 어떻게 피하나. 개인적으로 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너무 놀랐고, 제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민식이법에 해당해서 벌금이 나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한문철 변호사는 "A 씨에게 잘못이 하나도 없다는 의견"이라며 "(과실 비율 시청자) 투표해볼 필요도 없다. 저걸 어떻게 피하나. 아무리 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하더라도 횡단보도에서 건넜어야지 차 뒤에서 튀어나오면 어쩌라는 얘기냐"고 했다.

한 변호사는 "아이는 등하교하다가 사고가 난 거라면 학교안전공제회로 치료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건강보험으로 치료하는 게 옳다"며 "경찰이 만약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하지 않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검사가 또 법원에 기소한다면 무죄 주장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선 민식이법 실효성에 대한 의문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몇몇 네티즌들은 "이런 사고조차 재판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법이 참 어이가 없다", "차라리 모든 어린이보호구역에는 무단횡단을 하지 못하게 가드레일을 설치하라" 등의 의견을 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 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상해 교통사고를 내면 가중 처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민식이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2019년 9월 11일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벌어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잉 처벌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같은 해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 2020년 3월부터 시행됐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돼 시행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가 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법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청이 양정숙 무소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2017년 사고 460건(사망 8명·부상 459명), 2018년 사고 413건(사망 3명·부상 442명), 2019년 사고 522건(사망 6명·부상 530명)이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2020년에도 458건의 사고(사망 3명·부상 471명)가 발생했다. 2021년에는 495건의 사고가 발생하면서 전년 대비 24건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사망자는 2명, 부상자는 512명이 발생했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사망자 수는 소폭 감소했으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 교통사고 건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양 의원은 "민식이법을 시행하게 된 취지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할 만큼 그 효과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실효성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자 국무조정실 산하 한국법제연구원은 민식이법에 대한 '사후 입법영향평가'를 지난 5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평가 기간은 이달(9월)까지다. 법제처는 평가 결과에 따라 경찰청 등 담당 부처에 민식이법 개정 요청을 포함한 개선 권고를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