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일본 정부가 재산 압류를 위한 서류 수령을 거부하며 '번역이 잘못됐다'는 이유를 댄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일본 법무성은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가 작년 9월 보낸 재산명시 명령문과 출석요구서 등 반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압류하기 위해 재산명시 절차를 밟은 사건이었다.
앞서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 12명은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작년 1월 승소했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피해자 측은 손해배상금을 실제로 받아내기 위해 재산명시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이에 대한 서류를 재판부가 일본 법무성 법무대신에게 전달했지만, 법무대신은 '송달 문서의 일부에 대한 일본어 번역이 부족하다'며 수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 법무성은 원고 중 한 명의 주소지인 'OO시 OO구'의 일본어 번역이 미비하다고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번역을 수정해 올해 5월 재차 서류를 보냈음에도 일본 법무성은 '서류 송달이 일본의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한다'는 이유를 대며 송달을 재차 거부했다. 또한 일본은 정해진 기일에 법원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채무자에게 서류를 송달했지만 계속 반송됐고, 공시송달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달리 송달할 방법이 없다"며 이달 15일 재산명시 사건을 각하했다.
민사집행법상 재산명시 절차는 공시송달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서류를 송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통상 각하 처분된다.
다만 재판부는 "이 경우 채권자는 민사집행법 74조에 따라 재산 조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경우 채권자는 공공기관·금융기관 등을 통해 채무자가 국내에 보유한 재산을 조회하는 '재산조회'를 신청할 수 있다.
피해자·유족 측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를 검토하고 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