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자로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칙이 하나 있다. 큰 위기는 늘 경상수지 적자를 동반했다는 점이다. 경상수지는 한 나라가 해외에서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를 나타낸다. 상품수지(무역), 서비스수지(여행·운송), 소득수지(배당·이자)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처럼 수출주도형 국가에서 경상수지는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펀더멘털이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까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국이었다. 1986~1988년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 때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했다. 수출 호조로 달러가 물밀듯 들어왔다. 당시 3년 연속 10%가 넘는 고성장을 기록했다. 3저 호황이 끝나자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증시는 대폭락했다. 19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 덕분에 경상수지가 개선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95~1997년 3년간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는 외환위기의 도화선이었다.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위기의 파도가 닥치기 전에 경상수지부터 흔들렸다. 2007년 상반기 적자로 전환했고, 2008년 1~3분기 연속 적자였다. 큰 위기를 두 번 겪은 우리에게 경상수지 불안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서 재정은 경상수지와 함께 대외 신인도를 지키는 양대 기둥이다. 과거 두 번의 위기를 이겨낸 데는 재정의 역할이 컸다. 외환위기(1997년)와 금융위기(2008년)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1%(60조원)와 27%(309조원)로 재정이 비교적 튼튼했다. 정부가 금융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신속히 투입하고, 재정을 풀어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세금 퍼주기’로 지금은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됐다. 지난 5년간 국가부채가 500조원 폭증했다.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50%를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경상수지가 악화하면 대외 신인도가 흔들릴 수 있다. 무역수지는 6개월 연속 적자다.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7월 경상수지의 핵심인 상품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고, 8월에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환율에서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원·달러 환율은 22일 1400원을 돌파했다. 1400원을 웃돈 적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두 차례뿐이다.
과거에는 환율의 자동조절 기능이 작동했다. 지금처럼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면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 불균형이 해소되는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이런 복원력이 예전 같지 않다.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고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기류가 뚜렷하다. 자유무역이 퇴조하면서 환율의 자동조절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 고환율이 지속하더라도 경상수지가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가 급등, 성장률 둔화 등 거시지표가 일제히 악화하고 있다. 금리는 계속 오르고, 부동산 경기는 급랭 중이다. 가계부채의 부실이 터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내우외환이 한꺼번에 닥친 ‘퍼펙트 스톰’이다.
이제 총력 태세로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탁월한 경제 리더십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때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권을 갖고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그는 “대통령은 나를 기술자로 대했고, 정책에 대해 한 번도 간섭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금융위기 구원투수로 투입된 윤증현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위기극복 시나리오를 짰다.
윤석열 1기 경제팀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 등 모두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시너지를 내면 역대 최강의 원팀이 될 수 있다. 일체의 정치공학적 고려를 배제하고 ‘기술자’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여야는 당장 정쟁을 멈추고 위기 컨트롤타워에 힘을 보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