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여파로 파산 위기에 몰린 자국 가스 대기업 유니퍼를 국유화하기로 했다. 치솟는 가스 가격으로 경영난에 빠진 유니퍼를 구제하지 않으면 에너지 부문의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유니퍼 모기업인 핀란드 에너지 업체 포르툼은 “독일 정부가 주당 1.70유로의 증자를 통해 유니퍼에 80억유로(약 11조원)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21일 발표했다.
또 독일 정부는 포르툼이 소유한 유니퍼 지분 약 78%를 5억유로에 인수하기로 했다. 거래가 완료되면 독일 정부는 유니퍼 지분 약 98.5%를 확보하면서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마르쿠스 라우라모 포르툼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유럽 에너지시장과 유니퍼 경영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유니퍼 매각은 올바른 조치”라고 말했다.
유럽 최대 러시아산 가스 수입업체인 유니퍼는 지난 7월 독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150억유로를 지원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가 독일과 연결된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서서히 틀어막으면서 가스값이 뛰자 구제금융만으로는 유니퍼를 살려낼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독일 정부가 유니퍼 국유화에 나선 배경이다.
유니퍼는 그동안 값싼 가격에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해 독일 내 도시가스공사, 에너지기업 등 수백여 곳에 판매해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달 초부터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자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현물시장에서 가스를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한 후 유니퍼가 본 손실은 85억유로에 달한다. 유니퍼 주가는 올 들어 90% 가까이 폭락했다. 블룸버그는 “(에너지 수요가 높은) 겨울을 앞두고 독일 정부가 에너지 부문 붕괴를 막기 위해 역사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독일 정부는 VNG, SEFE 등 다른 가스 기업 두 곳에 대한 국유화 작업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가스업체 국유화는 녹색당이 포함된 독일 연립정부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에너지 기업 국유화 움직임이 독일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가스값 급등에 따른 에너지 기업의 피해가 유럽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너 호이어 유럽투자은행 총재는 20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구제금융 사례가 유럽에서 마지막이 될 것 같지 않다”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에너지 가격을 감안하면 더 많은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