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잘해봐야 비서"…혼수자금 들고 美 간 여대생

입력 2022-09-21 17:06
수정 2022-09-21 20:45

대학생 때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한국 여성 기업인이 세계적인 여자 프로축구단주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모에게 미리 받은 혼수자금을 밑천으로 중견기업 오너가 된 미셸 강(한국명:강용미) 코그노상트 회장(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강 회장은 1981년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며 서강대를 그만뒀다. "이대로 살면 아무리 잘해도 비서 이상 되기 힘들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다.

그는 무작정 "혼수자금을 당겨서 달라"고 부모를 설득해 미국에서 대입부터 다시 시작해 시카고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돈이 모자라 식당 일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고 학비를 아끼기 위해 대학을 조기졸업했다. 그 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EY에 들어가 컨설턴트로 일하다 방위산업체 노스럽그러먼의 임원으로 이직했다.

그러다 2008년 48세의 나이에 미국 워싱턴에서 헬스케어 정보기술(IT) 업체인 코그노상트를 창업했다. 미국 연방정부와 공공기관들을 상대로 사업을 수주하며 코그노상트를 10여년 만에 연 매출 4억달러(5500억원)에 직원 2000여명의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강 회장은 20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여성이 세운 회사는 100만달러 매출을 넘기기 힘들 때가 많다"며 "그 한계를 뛰어 넘게 하는 게 다른 사람의 힘이고 팀워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조직의 힘을 키우기 위해 회사 매출이 2000만달러일 때도 10억달러 회사에 뒤지지 않는 조건을 내세워 직원들을 뽑았다"며 "남들이 잘 안하는 과감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매년 매출이 두 자리 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기업경영의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2월 미국 여자 프로축구리그 전년도 우승팀인 워싱턴 스피리트를 인수한 것. 2020년 12월 워싱턴 스피리트의 공동 구단주로 이름을 올린 뒤 2년 만에 단독 구단주가 됐다. 당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딸인 지나 부시 해거 등이 워싱턴 스피리트의 주요 주주명단에 올려 화제가 됐다.

강 회장은 "전임 감독의 폭력으로 선수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축구단 운영을 맡게 됐다"며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 남자 축구 선수들은 4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지만 여자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4만달러에 그쳐 대부분 여자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축구를 포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여자 선수들이고 아이비리그 출신 선수들도 넘쳐 나는데 이들의 연봉이 남자 선수의 10% 수준에 그치는 건 말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강 회장은 스포츠 데이터 산업을 통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 여자 축구 경기를 보는 시청자 수가 경기 당 5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며 "남자 축구 시청자 수를 능가할 정도로 여자 축구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강 회장은 여자 축구와 관련된 데이터를 이용해 스포츠 복권 같은 다른 파생산업을 키우면 여자 축구도 남자 축구못지 않게 큰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3년 내 선수 연봉과 팀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워싱턴 스피리트를 세계 최고의 여자 축구팀으로 키울 것"이라며 "그 이후에 유럽과 한국의 여자 축구팀을 인수해 세계적인 여자 프로축구단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