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이 "목차가 이미 詩"라고 평한 '이 책' [작가의 책갈피]

입력 2022-09-19 15:40
수정 2023-05-04 16:39


평론가이자 시인인 이병철 작가는 지난해 여름부터 1년 넘게 배달의민족(배민) 배달기사(라이더)로 일해왔다. 시를 계속 쓰고, 가끔 낚시도 가고, 클래식 연주회도 가기 위해서다. 즉,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그는 당근마켓에서 40만원에 산 스쿠터를 몰고 오늘도 골목을 누빈다.

이 같은 경험을 담아 에세이집 <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를 출간한 이 작가를 최근 서울 모 카페에서 만났다.

자연스레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작가의 신간에는 문학과 책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스쿠터를 타고 골목길을 돌던 그는 기형도 시인의 시 '전문가'를 떠올린다.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주장하는 아이는, 그 아름다운/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



이 작가는 에마 미첼이 쓴 <야생의 위로>를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다. 이 책의 부제는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25년간 우울증을 앓은 저자가 반평생에 걸쳐 겪은 우울증에 대한 회고, 자연에서 받은 위안에 대해 썼다.

이 작가는 <야생의 위로>에 대해 "목차가 이미 시"라고 평했다. 이 책의 목차는 월 이름, 그리고 각 월에 대한 짧은 묘사로 이뤄져 있다. 이런 식이다. '10월, 낙엽이 땅을 덮고 개똥지빠귀가 철 따라 이동하다' '11월, 햇빛이 희미해지고 모든 색채가 흐려지다'…

이 작가는 "야생에서 위로를 얻는 것, 야생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몸에 프로그래밍돼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음식을 배달할 때는 도심을 달리긴 하지만 공원, 가로수 등 '인공 자연'을 자주 스쳐간다. 그는 "매연 냄새와 구분되는 나무 냄새가 훅 끼쳐오는 순간 큰 위로를 받곤 한다"며 "이 책은 멀리 자연으로 나가지 못할 때 위로를 해줄 수 있는 훌륭한 대체재"라고 설명했다.

독서는 평론가의 본업이다. 수많은 책을 읽고 평한다. 평론가는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고 읽을까. 그는 "업무든 취미든 책을 읽다 보면 그곳에 인용돼있는 책이나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며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이 책이 다른 책으로 연계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SNS에서 훌륭한 책을 발견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출판사, 서점뿐 아니라 작가들이 직접 SNS로 독자들도 소통해서다.

일상에서 시를 길어올리는 시인들의 SNS는 시집처럼 읽힌다. 홍일표 시인이 SNS에 올린 사물에 대한 단상은 최근 <사물어 사전>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이 책 역시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꼽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