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이(총수)의 친족에게 자료 제출을 강제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더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에서 제기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예외규정과 형사처벌 규정 등으로 규제완화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더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18일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달 11일부터 오는 20일까지 기업집단 총수를 이르는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종전보다 좁게 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다. 개정 전 시행령은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이의 6촌 이내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인 친족에게 주식소유 현황 등 자료 제출 의무를 부여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6촌 관계의 친족과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경우가 흔해 규제가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자 공정위는 이를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으로 줄이는 개정안을 예고했다.
경총은 이에 대해 "동일인 친족 범위 규정을 시대 변화에 맞게 축소한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예외규정을 두어 결과적으로 총수가 지는 부담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규정이 혈족인 5·6촌 및 인척 4촌(기타친족)이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의 주식 1% 이상을 갖고 있거나 동일인 또는 동일인 관련자와 채무보증·자금대차가 있는 경우에는 친족에 포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경총 측은 "예외규정에 따르면 기타친족이 다른 친족 및 계열사 등기임원 등과 채무보증·자금대차 관계가 있는지 여부까지 추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며 "현재는 없는 내용이 오히려 추가돼 시행령 개정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주식 소유자료가 누락되는 등 문제가 생기면 총수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점도 마찬가지다. 경총은 자료 제출 누락에 대한 법적 책임도 총수가 아닌 당사자들에게 묻는 게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동일인에게 친족들의 지정자료 제출에 대한 의무와 이에 따른 법적책임(형사책임)까지 요구하는 법 집행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예외 없이 일괄적으로 4촌 이내의 혈족, 3촌 이내의 인척으로 줄여 제도를 합리화하고, 해외에는 없는 대기업집단 규제 정책도 함께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총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 경쟁법(공정거래법 등)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친족 기반의 대기업집단 규제가 없다. 또 회사법(상법) 등에서 예외적으로 일정 범위의 가족을 포함하는 규제가 있으나 대단히 제한적이다.
독일은 '가까운 가족(이사의 자기거래 관련 규제)' 혹은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이사의 신용거래 관련 규제)'에 대한 규제가 있고, 일본은 이사 등에 대하여 배우자 및 2촌 이내 혈족 및 인척과의 거래를 규제하는 사례가 있다고 경총은 소개했다. 한국처럼 전방위한 범위의 친족 관련 자료 제출 등을 강제하고 이를 총수의 형사처벌 근거로 삼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