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영빈관 신축 계획을 전면 철회하라고 지시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첫 정기국회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할 조짐이 보이자 이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 이후 대통령실의 자산이 아닌 국가의 미래 자산으로 국격에 걸맞은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이 같은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즉시 예산안을 거둬들여 국민에게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했다.
정부는 옛 청와대 영빈관 격의 부속시설 건립을 위해 내년 예산에 878억원을 배정했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민생과 관련 없는 예산을 쓴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핵심 참모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브리핑 당시만 해도 영빈관 신축에 대해 “국익을 높이고 국격에 걸맞게 내외빈을 영접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영빈관을 신축하는 배경에 대해 “국방컨벤션센터, 전쟁기념관, 국립박물관 등 그동안 여러 곳에서 내외빈 행사를 준비했는데, 경호에 어려움이 있고 경호 비용이 더 추가되며, 이에 따른 시민 불편도 당연히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용산 시대에 걸맞은 영빈관의 필요성에는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입장을 낸 지 일곱 시간도 지나기 전에 윤 대통령의 철회 지시가 나온 것이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해외 순방을 앞두고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여권 내에서도 영빈관 신축에 대한 반대 의견이 상당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민생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더불어민주당의 거센 반발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영빈관 신축 예산) 878억원이면 수재민 1만 명에게 1000만원 가까이 줄 수 있는 돈 아니냐”며 “국민 여론에 반하는 예산이 통과되지 않도록 하는 건 다수 의석을 가진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대통령실이 양치기 예산을 편성해 가뜩이나 민생고로 힘든 국민을 또 속였다”고 비난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비용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밝힌 금액(496억원)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의미다.
정부는 애초 대통령실 청사 경내에 국가영빈관을 짓고 외국 정상 등 귀빈을 영접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날 지시로 대통령실 2층 다목적홀이나 국방컨벤션센터, 전쟁기념관 등을 내외빈 행사 장소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한국갤럽은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13~15일(9월 3주차)에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33%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직전 조사인 9월 1주차(27%) 대비 6%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긍정 평가는 지난 7월 4주차(28%) 조사에서 취임 후 처음 20%대로 떨어진 뒤 8월 1주차에 24%로 최저점을 찍었다. 이후 줄곧 20%대에 머물다가 이번 조사(9월 3주차)에서 30%대로 반등했다.
좌동욱/양길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