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장비를 설계·제조 전문업체 '코윈디에스티'가 최근 중국 기업에 매각됐습니다. 2005년 설립된 코윈디에스티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리페어 장비 제조 기술뿐 아니라 LCD 리페어 장치 원천 특허를 다수 보유한 국내 강소기업입니다. 2019년 문재인 정부가 한국 디지털 경제를 이끌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으로도 선정될 정도로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불과 3여년 만에 중국으로 팔려나가게 된 것입니다."韓 기업 인수로 디스플레이·반도체 국산화 실현"
지난 10일 중국 포커스라이트 테크놀로지(Focuslight Technologies·거광커지)는 3억5000만위안(약 699억원)에 한국 코윈디에스티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상하이거래소에 공시했습니다. 포커스라이트는 2007년 설립된 고출력 반도체 레이저 부품 및 광학 부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으로, 지난해 12월 중국판 나스닥인 커촹판(科創板)에 상장된 중견기업입니다. 이 기업은 2017년 독일의 반도체 레이저 전문기업 리모(LIMO)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 코윈디에스티를 품는 등 차근차근 해외 유수 기업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코윈디에스티는 LCD와 OLED 레이저 리페어와 관련된 특허 60여건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 시 불량이 발생하면 고쳐주는 데 사용됩니다. 이런 기술이 탑재된 레이저 리페어 장비는 디스플레이를 대량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핵심 장비입니다. 중국 포커스라이트 이번 인수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디스플레이·반도체 핵심 장비 국산화를 실현한다는 계획입니다.
포커스라이트 측은 "첨단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 집적 회로 분야 등 전 반도체 공정 비즈니스에서 확실한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예전에도 당했던 중국의 그 수법…등골이 '오싹' 하네
코윈디에스티의 인수건을 지켜보면 데자뷰(deja vu)가 느껴집니다. 현재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이자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BOE(징둥팡)의 사례입니다. BOE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들의 하청 업체에 불과했습니다. 계속되는 적자로 어려움을 겪던 BOE가 '기사회생' 하게된 계기는 2002년 말 한국 현대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하면서입니다. BOE는 인수 즉시 전산을 통합해 핵심 기술을 빼내고 4년 뒤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했습니다.
당시 3류 수준이던 BOE는 하이디스 기술을 등에 업고 2003년 6월 LCD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에는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전 세계 대형 LCD 패널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섰습니다. 최근에는 차세대 OLED 패널을 생산해 애플의 아이폰14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중소형 OLED 패널이 아이폰 신제품에 탑재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아이폰에 들어가는 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했는데, 지난해에는 중국 BOE가 공급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자리를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 CSOT(차이나스타), 티엔마, 비전옥스 등의 점유율은 20.5%로 추정됩니다. 2019년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점유율은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17.7%로 치고 올라왔습니다. 인력 매수하고 기업 인수…韓 '국가핵심기술' 빨아들이는 中
중국 기업의 기술·인력 빼가기 행보는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최근 한 채용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에서 근무가 가능한 소형 OLED 개발·공정 분야 경력자를 구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채용 조건은 소형 디스플레이 종합 공정 5년 이상 경력자 또는 반도체 CF 공정 8년 이상 경력자 등입니다. 업계에서는 이 회사를 중국 BOE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국내보다 3배 수준의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있어 '혹'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지난해 중견 시스템반도체 회사인 매그나칩도 약 14억달러(한화 약 1조7800억원)에 중국계 사모펀드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매그나칩은 2004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비메모리 부문이 분사해 세워진 기업으로 미국 씨티그룹에 인수된 후 2011년 뉴욕 증시에까지 상장돼 있는 기업입니다. 다만 매각 성사 직전 미국이 국가 안보 리스크를 이유로 거래를 막은 덕분에 인수가 불발됐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OLED 칩 핵심 기술 유출을 막았습니다.
최근 국가 핵심 기술 유출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국정원이 적발한 첨단기술 해외 유출은 총 83건을 기록했습니다. 이 가운데 33건(39.8%)은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핵심기술'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반도체·전기전자·디스플레이·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사업(69건)에 대한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핵심 인력 매수 △인수합병 활용 △협력업체 활용 △리서치업체를 통한 기술정보 대행 수집 △공동연구 빙자 기술유출 △인·허가 조건부 자료제출 요구 등 수법으로 기술을 탈취하고 있다고 합니다.5년간 피해 규모 22조…"강력한 보호조치 필요"
유출된 기술을 대부분 중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최근 5년간 국가핵심기술 유출로 발생한 피해 규모는 2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입니다.
한국은 2004년 디스플레이 종주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왕좌에 올랐지만 지난해 17년만에 중국에 자리를 내줬습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2024년에 이르면 중소형 OLED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와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가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41.5%로 1위를 기록했고, 한국은 한찬 뒤쳐진 33.2%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커진 것 입니다. 최근 삼성과 LG는 LCD 사업을 철수하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LCD 이어 OLED 강자를 노리는 중국의 움직임에 단단히 대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