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며칠 앞두고 남부지방을 할퀸 태풍 힌남노가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채 동해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100년 만에 가장 둥글었다는 보름달이 찾아와 전국을 포근하게 비췄다. ‘사랑의 송편 만들기’ 행사도 곳곳에서 열려 한가위 넉넉함을 더하는 데 한몫했다. “7일 오전 경기도 OOO에서 열린 송편 만들기 봉사활동에서 참가자들이 관내 취약계층에 전달할 송편을 포장하고 있다.” ‘만들다’ 일변도 탈피 … 서술어 다양하게이즈음의 ‘송편 만들기’는 대부분 언론에서 한 번쯤 보도하는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말 사용에 거슬리는 곳이 눈에 띈다. ‘송편 만들기’가 그것이다. 송편은 만드는 걸까 빚는 걸까? 무엇을 써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맛깔스러운 표현이 있다. 송편을 ‘빚는다’고 할 때 대부분 더 편하고 친근하게 여긴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모국어 화자라면 굳이 국어사전을 들추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우리 언어 현실은 ‘송편 만들기’가 ‘빚기’를 압도하는 듯하다.
돈은 모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금 만들기보다 ‘자금 모으기’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추억은 ‘쌓는다’고 할 때 말맛도 살아난다. 그런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추억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으면서 말은 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할까?
글쓰기에서 이런 사례는 주위에 널려 있다. △체육관을 만들다(→세우다) △시스템을 만들다(→갖추다) △시간을 만들다(→내다) △예외를 만들다(→두다) △대책을 만들다(→마련하다) △좋은 일터를 만들다(→가꾸다) △차별화를 만들다(→이루다) △프로그램을 만들다(→짜다) △네트워크를 만들다(→구축하다) △환경을 만들다(→조성하다) △꿈을 만들다(→키우다) △단단하게 만들다(→하다) △차이를 만들다(→가져오다) △창업 1년 만에 매출 100억 원대 회사로 만들었다(→성장시켰다) △무엇이 싱가포르를 금융 중심지로 만들었을까(→자리잡게 했을까)
모두 ‘만들다’에 사로잡힌 결과다. 화살표 뒷말이 본래 우리가 어울려 쓰던 다양한 어휘 표현이다. 그것을 ‘만들다’가 잠식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말이 조화롭지도, 정교하지도 않다. 표현의 획일화와 단순화만 남았을 뿐이다. 표현은 다양하게 하되 뜻은 명료해야‘자연스럽고 건강한 글쓰기’를 위해서는 표현을 다양하게 하되 뜻은 명료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휘 차원에서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전통적이고 관용적인 표현 또는 용법에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앞에서 살핀 ‘~만들다’가 그런 조건을 벗어난 경우다. 본래 ‘송편을 빚다’라고 하던 것을 어느 순간부터 ‘송편을 만들다’라고 쓴다. 이것은 어색하다.
다른 하나는 단어를 의미에 맞게 써야 한다는 점이다. 단어 선택을 잘못하면 글의 자연스러움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번 태풍 힌남노에서도 그런 사례가 눈에 띄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실종된 주민 7명 가운데 5명이 구조됐다. … 구조된 5명 가운데 …(2명)은 생존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여성 2명과 남성 1명은 심정지 상태로 추정된다고 소방당국은 밝혔다.”
이때의 ‘구조’(재난 등을 당해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구해줌)는 이상하다. 7명 가운데 5명을 구조했다고 하면 이들 5명을 살려서 구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보니 글을 읽으면서 어색함이 느껴진다. 같은 내용을 전달한 일부 신문은 달리 표현했다.
“포항 지하주차장 침수 현장에서 실종자 7명 중 5명이 잇따라 발견됐다. 다만 이 중 3명은 의식불명 및 심정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 경북소방본부는 실종자 7명 중 5명을 발견했고 이 중 2명이 생존하고 3명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여기선 ‘발견’을 썼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발견하다’와 ‘찾다’를 적절히 섞어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