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국내 증시를 둘러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물가 정점론'에 대한 기대감이 깨지면서 미 중앙은행(Fed)이 고강도 통화긴축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주장에 급격히 무게가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조만간 연저점(2292.01)을 깨고 내려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분간 주식비중을 축소하면서 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지고 있다.
14일 오후 코스피 지수는 1.28% 하락한 2418.13에 거래 중이다. 개장 직후 2381.50까지 하락했던 코스피지수는 오전 중 낙폭을 다소 축소해 2400선을 회복했지만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날 발표된 미 8월 CPI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은 충격파다. 13일(현지시간) 미 노동부가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같은 달보다 8.3% 올라 시장 전망치 (8.0%)를 상회했다. 에너지 관련 품목은 하락세를 보였지만 주거비(6.6%→7.8%), 음식료(10.9%→11.4%) 부문 등이 크게 높아졌다. Fed가 주목하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의 전달 대비 상승률(0.6%)이 7월(0.3%)의 두 배로 치솟으면서 큰 폭의 금리 인상 우려가 확산했다.
오는 20~21일 열리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 Fed가 기준금리를 100bp(1bp=0.01%포인트)까지 올릴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8월 CPI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시장의 예상보다 오랜 기간 높은 구간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100bp를 올리는 충격 요법이 시장에 가해져야 기대 인플레이션이 꺾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미 기준금리가 연 4.25~4.5%까지 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Fed가 9월과 11월, 12월 각각 75bp, 50bp, 50bp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제프리스는 9월, 11월에 각각 75bp를 올린 뒤 12월 50bp로 인상 속도를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 충격으로 미 국채금리가 치솟은 여파로 네이버는 개장 직후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카카오도 2.57% 급락 중이다. 전날 급등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89%, 1.79% 하락 중이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증시 하방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기록했던 코스피 연저점이 깨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안정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거비 등이 크게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단기간에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예상보다 강한 Fed의 통화긴축 기조가 이어지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도 재차 커져 코스피 지수의 연저점도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은 이날 내년 상반기 코스피 지수 저점을 2050선으로 제시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당분간 고강도 긴축과 경기 불확실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라며 "주식비중을 축소하고 현금 비중을 확대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고점을 뚫고 올라가는 상황에선 섣불리 저가매수에 나서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학균 센터장은 "장기 시계열 관점에서는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국면에 진입한 것은 맞다"면서도 "인플레이션 피크아웃에 대한 기대감을 많이 낮춰야 하는 상황에선 시장의 하락폭은 실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보다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물타기 전략'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9월 FOMC 이후 기계적 반등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75bp 이상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9월 FOMC 이후부터는 기준금리 인상 폭이 50bp 수준으로 낮아지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CPI가 급격히 높아졌던만큼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CPI 상승폭도 낮아질 수 있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9월 FOMC 이후 박스권(예상치 2300~2560) 상단까지 올라서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며 "'박스권 트레이딩'이 가능한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연말부터 강도높은 통화정책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들고 원·달러 환율도 다소 안정화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시적으로 전저점까지 내려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놔야 겠지만 연말~내년초부터 원·달러 환율이 안정화되기 시작하면 외국인 수급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형주 중심으로 반등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