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손해보험업계는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하는 등 호실적을 거뒀다. 코로나19 오미크론 유행과 고유가 등으로 인해 교통량이 감소한 덕분에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개선된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메리츠화재도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물론 언제까지 축배를 들고 있을 수만은 없다. 손보업계가 마주하고 있는 올 하반기 이후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팬데믹 효과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고 내년 도입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맞춰 체질 개선에도 나서야 한다. 금융당국이 보험상품 중개 플랫폼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빅테크의 공습도 격화할 전망이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사진)은 14일 “세상에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는 메리츠화재 100주년 기념 광고의 카피 문구이기도 하다. 그는 “2025년까지 손보업계 순이익 1위라는 목표가 불가능해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만년 5위’에서 3위로 도약하기 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며 “당기순이익 뿐만 아니라 시가총액, 장기인보험 매출에서도 1위를 달성해 반드시 ‘트리플 크라운’의 영예를 안겠다”이라고 다짐했다.
▷손보업계 흑자가 ‘팬데믹 어부지리’라는 평가가 있다.
“손보업계의 호실적이 코로나19 팬데믹, 고유가 같은 외부 상황에서 기인했다는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메리츠화재의 자동차보험은 최근 몇년간 흑자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사실 (자동차보험의) 경쟁사 대비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아 (팬데믹)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병원 이용률 하락에 따른) 장기보험 개선 효과도 일부 있었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사실 일회성 실적 개선은 중요하지 않다. 메리츠화재는 2019년 손익기준 손보업계 3위에 오른 뒤 작년과 올해도 상위사와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등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2015년 취임 후 ‘아메바 경영’을 도입했지만 단기 실적 위주라는 지적도 있다.
“아메바 경영은 단기 결실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미래 가치를 증대하기 위한 것이다. IFRS17의 ‘미래 가치의 현가 평가’ 개념을 반영해 아메바 경영을 설계했다. 2015년 도입 이후 꾸준히 장기 건전성도 관리하고 있다. 아메바 경영의 핵심은 ‘질 좋은 매출’을 많이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는 단순히 수입보험료 규모가 아닌 장기 수익성까지 골고루 반영된 가치 평가액이 매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단기 성과를 내기 위해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기보다 오직 본질적인 영업 경쟁력을 배가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의 성과도 이 과정에서 나온 부상일 뿐이다.”
▷‘2024년까지 순이익 1위’ 목표는 여전히 유효한가.
“경쟁사들의 저력은 잘 알고 있지만 손보업계 1위라는 목표는 지금도 유효하다. 메리츠화재는 2015년 이후 철저한 계산을 통해 향후 3개년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매번 이를 초과 달성함으로써 성장의 모멘텀을 마련해 왔다. 만년 5위였던 우리가 3위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업계에선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다. 이번 100주년 광고 카피도 ‘세상에 바꾸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다. 어려울 순 있으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음 목표는 2025년까지 ‘장기인보험 매출 1등’, ‘당기순이익 1등’, ‘시가총액 1등’까지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것이다.”
▷메리츠만의 대표 상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진단비와 장기이식을 보장하는 새로운 담보로 배타적 사용권을 받았다. 신상품은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다만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객에게 도움이 되면서 회사가 감내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겠다.”
▷경쟁사는 헬스케어·장기요양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모든 영역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핵심가치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신사업의 핵심은 ‘고객 만족’이다. 보험 상품을 통한 고객 만족의 실질적인 차별화가 중요하다. 메리츠화재는 2019년부터 ‘고객 경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 만족을 이끌어내고 있다.”
▷빅테크 진출 등으로 기존 보험사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빅테크 진출과 법인보험대리점(GA) 채널 확대라는 영업 환경 변화는 시장의 트렌드다. 이러한 영업 환경 변화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 가속화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좋은 상품을 공급해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원수사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업 환경이 변하더라도 보험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잘 활용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도 제기된다.
“지난 7~8년간 부동산 PF 투자 확대와 병행해 엄격한 리스크 통제 기준을 적용해 왔다. A급 이상 시공사 책임 준공으로 담보권을 확보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 이하 최선순위 투자로 시장가격 변동에 대응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부실이 발생한 PF는 단 한건도 없었다. 올해 1분기 말 가중부실자산비율은 0.17%로 현저히 낮다. 최근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경기 둔화 우려가 대두되고 있어 내부적으로 LTV나 시공사, 분양성 등 ‘허들’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메리츠화재의 역할과 기여도를 종합 평가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손해보험사다. 우리나라 보험업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최근엔 ‘게임 체인저’로 보험업계에 혁신을 이끌었다. 이 두 가지가 지난 100년의 시작과 끝인 것 같다. 특히 수십년간 고착돼 있던 보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자평한다.”
이인혁/이호기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