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15일 16:1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산 화장품 브랜드인 미샤(법인명 에이블씨엔씨)를 보유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가 '눈물의 손절'에 나선다. 약 4000억원을 들여 경영권을 인수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수 년째 수익성 악화를 겪으며 사실상 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서다. 매각 측의 눈높이가 다소 낮아지면서 에이블씨엔씨가 20여년간 구축한 브랜드와 판매망을 확보하려는 국내외 화장품사들과 유통분야 확장을 꾀하는 화장품위탁생산업체(ODM) 등이 관심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로드샵 신화 미샤…5년 만에 '아픈 손가락'으로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IMM PE는 최근 크레디트스위스(CS)를 매각주관사로 선임해 에이블씨엔씨의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매각 대상은 IMM PE가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보유한 에이블씨엔씨 지분 59.2%이다. 매각 측은 3분기 실적이 집계되는 이달 말 이후 티저레터 배포를 시작으로 절차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IMM PE 보유 지분의 매각가론 약 1500억~2000억원이 거론된다. 에이블씨엔씨의 시가총액은 15일 종가 기준 1560억원을 기록 중이다.
IMM PE는 2017년 창업자인 서영필 전 에이블씨엔씨 회장이 보유한 지분 25.5%를 1882억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당시 주가인 2만8000원에 약 50%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주당 4만3636원에 인수를 마무리했다. 이후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등을 통해 2363억원을 더 투입해 지금의 지분율까지 늘렸다.
2000년 설립된 에이블씨엔씨는 로드샵 기반의 중저가 화장품 열풍을 불러온 1세대 화장품업체다. '3300원'을 내세운 초저가 제품들과 1+1 행사를 편 '미샤 데이' 등이 인기를 끌며 인지도를 쌓았다. 2002년 이화여대 앞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연 후 2017년엔 전국에 695 곳의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인수 시점을 기점으로 국내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급격히 축소하며 에이블씨엔씨는 IMM PE에 '아픈 손가락'이 됐다. 인수 직후엔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주요 고객군인 중국 관광객 입국이 끊기며 직격탄을 맞았다. 2017년 112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2019년 18억원까지 줄었다. 지난해엔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며 224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매출도 인수 직후인 2017년 3732억원에서 2019년 4222억원까지 증가했지만, 지난해엔 2629억원으로 급감했다. 인수 시점 대비 30%이상 줄어든 수치다.
IMM PE는 ‘돼지코팩’ 브랜드로 유명세를 탄 미팩토리, 수입화장품 유통업체인 제아H&B와 기능성 화장품 업체인 지엠홀딩스 등 중소형 화장품사들을 인수하는 볼트온으로 탈출구를 찾았지만 별다른 시너지를 보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점차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현상이 짙어지고, 온라인을 통한 구매가 일상화되면서 중·저가, 오프라인 위주의 사업구조였던 에이블씨엔씨 부진은 장기화됐다. IMM PE 해외·온라인으로 체질 변화…흑자 전환도
IMM PE는 지난해 6월 할리스의 기업가치를 키워 성공적으로 매각한 김유진 전무를 에이블씨엔씨의 대표이사로 파견해 전면적인 체질개선에 돌입했다. 강점이던 오프라인 로드샵을 효율화하고 온라인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는 작업에 속도를 냈다. 점진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매장들의 폐점에도 나섰다. 인수 시점 700여곳에 육박했던 매장 수는 지난해 327곳까지 줄었다. 난립하던 브랜드와 제품 군을 정리하고 ‘보라색 앰플’, ‘비타 C’ 등 브랜드 당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온 스테디셀러들에 자원을 집중 투입했다.
오프라인 매출이 대부분이었던 수익구조도 온라인과 해외로 다변화했다. 2019년 에이블씨엔씨의 전체 매출 중 오프라인이 63%에 육박했지만 올해는 38%까지 축소됐다. 대신 해외 매출은 같은 기간 25%에서 39%로, 온라인 매출은 13%에서 23%까지 급성장했다.
이 같은 구조조정에 힘입어 실적도 점차 개선됐다. 올해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2분기엔 2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몸값 산정의 기준이 되는 올해 연간 EBITDA도 200억원 수준까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장품 업계에선 토니모리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등 에이블씨엔씨와 중저가 시장에서 경쟁해온 브랜드들이 대거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점이 오히려 매각 기회가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자체 채널을 모두 갖춘 브랜드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화장품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중견기업과 중저가 라인업을 강화하려는 프리미엄 중심의 화장품 기업, 무신사를 포함 화장품 및 뷰티 분야에서 자체 PB브랜드의 확장을 시도하는 곳들이 잠재 인수 후보군으로 꼽힌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업계가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소수의 고가 프리미엄 업체들과 일부 3년 차 미만의 스타트업 시장으로 양극화되면서 오랜기간 소비자에 인지도를 쌓아온 미샤 브랜드의 희소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적당한 가격대라면 다수의 업체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