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예타 면제 없앤다

입력 2022-09-13 18:11
수정 2022-09-14 01:03

정부가 대형 공공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요건을 강화한다. 지난 정부가 120조원 규모의 재정 투입 사업을 예타 면제로 추진하면서 혈세를 낭비했다는 판단에서다.

▶본지 7월 26일자 A1, 3면 참조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는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공공사업의 경제성 평가 면제 요건을 강화하는 ‘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예타 면제 요건을 분야별로 구체화해 국가재정법에 명시하기로 했다. 현재는 국가정책적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국무회의 의결로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는 국가정책적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도 사업 규모와 사업비 등의 세부 산출 근거가 있고, 재원 조달·운영계획 및 정책 효과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사업만 예타 면제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은 예타 금액 기준을 완화한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에 국비 300억원 이상 투입’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 이상에 국비 500억원 이상 투입’으로 상향한다. 현행 기준은 1999년 도입된 이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지난 23년간의 경제 규모 확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시범사업 없이 대형 복지사업 못한다정부는 한 번 재정이 투입되면 중단하기 어려운 대규모 복지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높이기로 했다. 시범사업 실시 여부를 검토하는 절차를 신설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예타를 시행한 12개 복지사업 중 9개는 시범사업을 거치지 않았다. 앞으로는 무조건 시범사업 실시 여부를 사전에 판단하고, 시범사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의무화하겠다는 설명이다. 시범사업 이후 평가 결과를 토대로 예타 착수를 결정한다.

복지사업 대부분이 사업계획 보완을 조건으로 예타를 통과시켜주는 ‘조건부 추진’으로 판정받는 문제점도 고친다. 조건부 추진으로 결정되는 점수 구간을 좁히고, ‘전면 재기획’ 구간을 확대한다. 조건부 추진으로 결정된 사업도 시행 2~3년 뒤 심층 평가를 거치도록 했다.

문화재 복원 사업은 현재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만, 앞으로는 복원 외 관련 도로 정비 등 주변 정비사업이 전체 사업의 50% 이상이 되면 예타를 거치도록 한다. 국방 관련 사업도 민간과 경합하거나 전력(戰力)과 관계 없는 사업은 예타 면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정부가 예타 면제 요건을 강화하는 것은 지난 정부에서 면제 규모가 급증해 결국 재정에 부담을 줬다는 판단에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임기(2017년 5월~2022년 4월) 중 149개 사업이 예타를 면제받았다. 이명박 정부(90개)와 박근혜 정부(94개)보다 훨씬 많다. 예타 면제 사업 규모도 문재인 정부는 120조1000억원으로 이명박 정부(61조1000억원)의 2배, 박근혜 정부(25조원)의 4.8배에 달했다.

정부는 다만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 기준금액 요건을 완화했다. 예타 기준금액 기준(총사업비 500억원 및 국비 300억원)은 1999년 도입돼 현재 상황과 맞지 않다는 일각의 지적을 수용해 총사업비 1000억원 및 국비 5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예타 절차가 사업 추진을 더디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 선정 및 조사 기간을 기존 대비 4개월 줄이는 ‘신속예타절차’도 도입한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