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행사가 한창이던 지난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화랑 부스에 나와 있던 이수동 작가(63)에게 젊은 남성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그림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하려는데, 선물로 그녀가 평소 좋아하던 이 작가의 그림을 건네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안내를 받아 4호 크기(가로 33㎝, 세로 23㎝) 그림을 구입한 청년은 작품을 소중히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작가는 “작가 생활을 하며 가장 보람찬 순간 중 하나였다”며 웃었다.
‘행복을 주는 그림’으로 유명한 이수동 작가가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3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 작가 고유의 화풍에 개막 전부터 컬렉터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14일부터 시작하는 이 전시에는 총 37점의 그림이 나온다. 이 작가가 연인과 가족, 꽃과 바다 등 소재를 동화 같은 색채와 아기자기한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들이다. 이 중 네 점은 개막하기도 전에 팔려나갔다.
그가 처음부터 행복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린 건 아니다. 이 화백은 “대구에서 그림을 그리던 무명 화가 시절에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처럼 험악한 인상의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고 말했다. 예술을 하려면 심오한 그림을 그려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화랑 주인에게 “그림을 사간 집의 어린아이가 그림이 무서워서 운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를 울리는 그림을 그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어요. 그 후 화풍을 확 바꿨죠. 그때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33년이나 지난 지금도 어제 일 같습니다.”
화풍을 밝게 바꾸자 그의 삶에도 행복한 일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당시 전국을 돌며 젊은 유망 작가를 찾던 노화랑의 노승진 대표(74) 눈에 띄어 1992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게 시작이었다. 2000년 최고 시청률 42.3%를 기록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KBS 드라마 ‘가을동화’에 작품을 등장시키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극중 미술강사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 윤준서(송승헌 분)의 그림과 작업실이 모두 이 작가의 것이었다.
“운이 정말 좋았어요. 원래 대본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의사였는데, 2000년 의사들의 파업으로 여론이 나빠지면서 주인공 직업이 화가로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에 그림을 내보낼 화가를 공모한다는 얘기를 듣고 작품을 잔뜩 그려서 보냈습니다. 성실함이 통했는지 제가 뽑혔고, 이후 본격적으로 성공 가도를 걷기 시작했죠. 2006년에는 당시 유행했던 소셜미디어 싸이월드에서 제 그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덕분에 ‘완판 작가’라는 별명도 얻었죠. 그때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이번 전시는 그의 ‘서울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여는 전시다. 이 작가는 “이번에 내놓은 작품들은 평소보다 완성도를 더 높였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내 작품이 미술관에 걸릴 자격이 있나’ 되묻게 된다”며 “대중성은 잡았으니 이제는 미술관에 걸릴 만한 그림, 화가들도 감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전시장에 나온 그의 그림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가을신부’ 등 결혼을 모티브로 한 그림들은 최근 결혼한 큰딸을, ‘봄이 오는 소리’는 여행 갔을 때 아내를 찍은 사진을 생각하며 그렸다. 그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 평소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그림으로 대신 표현하곤 한다”고 말했다.
임창섭 미술평론가는 “이번 전시작들은 이전 작품에 비해 공간감이 더욱 깊어지고 이야기가 다채로워졌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