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 가운데 회계 이슈를 이용해 기업을 압박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최종학 서울대 교수(사진)는 13일 경영전문대학 부학장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 교수는 “2010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국내 정치권력이 이를 파고들어 쉽게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며 “과거에도 기업의 사소한 잘못을 꼬투리 잡아 처벌하곤 했는데, 최근 정치권력이 세지면서 내용이 노골화하고,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지난 1일 경영·회계 분야 베스트셀러인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을 4년 만에 출간했다. 학문 이론과 현실 사례를 담은 이 시리즈는 기업과 정부 정책에 반영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감리위원 등을 거쳐 이번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으로 발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신간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를 비롯해 SK C&C와 SK㈜ 합병, 대우조선해양 회계 분식 이후 처리 과정 등의 사례를 통해 ‘정치권력이 회계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서술했다.
그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하자 “상당수 학자와 회계사들은 금융감독원의 분식회계 조작 사건이라고 한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 문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서 삼성 일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나쁜 짓을 했다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금감원이) 여론전을 펼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금호산업 등 다른 기업도 과거 동일한 회계 처리를 했음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만 문제 삼은 것”이라며 “금감원은 2015년 적정 회계 처리라고 밝힌 뒤 정권이 바뀌자 말을 바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를 조작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시기상 맞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합병 이전에 회계 조작을 해야 한다. 하지만 두 회사의 합병 발표 시기는 2015년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는 2016년 이후다. 최 교수는 “금감원은 2015년 SK C&C와 SK㈜의 합병 과정에서 SK C&C의 자산가치가 부풀려졌다고 주장했지만 증권선물위원회가 SK 손을 들어줘 문제가 일단락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력의 기업 옥죄기는 ‘낙하산 인사’ 문제로까지 번졌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낙하산 인사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이라며 “한때 한국형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라고 칭송했지만 주인이 없다 보니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되지 않았냐”고 지적했다.
기업 경영에서 정치권력을 떼놓기 위해서는 국민이 ‘정치 만능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기업이 정부·정치권력보다 훨씬 실력이 좋다”며 “이제는 기업에 자율권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업도 투자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지배구조에서 불합리한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훈/서형교 기자/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