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다수당이면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특이한 내력이 있다. 당 전반에 대한 대표의 장악력이 아주 막강하다는 점이다. 기업으로 치면 오너에 견줄 정도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새천년민주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열린우리당)은 아예 기존 당을 깨고 ‘대통령당’을 새로 만들 만큼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 절정을 치달았다. 전체 국회의석의 60%를 차지한 압도적 다수 여당이 청와대의 손짓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치 경제 외교안보 등 모든 이슈를 국회나 행정부가 아니라 청와대에서 기획·조율하고 주물렀다. 거대 여당은 내려오는 지침에 맞춰 충직하게 작동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자타공인으로 등장한 희대의 용어, ‘청와대 정부’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당(중앙)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의 정당 작동이 정상일 리 없다. 청와대가 결정하고 당은 그저 손발 노릇만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민주당 내에서는 실질적인 토론이 사라졌다. 청와대 뜻에 어긋나는 발언을 내놓았다가는 충성분자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당에서 축출당하기 일쑤였다. 치열한 정책토론을 ‘누가 더 강성인가’를 가리는 웅변 경쟁이 대신했다.
진지한 토론과 건강한 논쟁이 실종된 정치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낼 리 없다. 부동산시장을 극과 극의 온탕·냉탕 수렁에 빠뜨린 규제일변도 정책에서부터 김정은 정권의 ‘핵 무력 사용 법제화’ 부메랑으로 돌아온 대북 유화정책에 이르기까지 실패로 판명 난 정권 아젠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답정너(답은 정해놓았다. 너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 정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의 ‘원조 오너’인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쉽게 거스르기 힘든 카리스마를 발산하면서도 주요 국정과제에 대해선 여러 의견에 귀를 열었다. 각 분야에 전문가들을 기용하고, 중요한 결정은 국회 논의를 통해 걸렀다. 김 전 대통령은 경제 분야 국정을 경험 많은 우파 관료 출신들에게 맡겼고,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구성에서부터 좌파(문재인 민정수석과 86세대 운동권 출신)와 중도파(문희상 비서실장, 김병준 정책실장 등)를 두루 포진시키며 균형을 추구했다.
군사정부 시절 제정된 중소기업고유업종(대기업 참여를 금지함으로써 관련 중소기업을 보호) 제도를 노무현 정부가 ‘시장경제 활성화를 막는다’며 폐지한 것을 비롯해 좌파 지지층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 등이 그 결과물이다. 강력하되 유연한 국정 리더십이 가능했던 것은 당내 민주주의가 뒷받침한 덕분이었다. 너무 치열해 논란을 빚었던 ‘빽바지’(개혁)파와 ‘난닝구’(실용)파 간 대립이 단적인 예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5년 만에 다시 야당으로 전락한 것은 누가 뭐래도 ‘불통 정치’가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을 당 재건의 전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유감스럽게도 요즘 민주당의 행보는 그렇지 않다. 최근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로 취임한 이후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소속 의원들 발의로 입법을 추진했던 원격의료 허용 법안을 “야당이 된 마당에 왜 우리가 나서야 하냐”며 발을 빼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정책을 추진하는 기준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가 다른 정당을 제대로 된 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라의 백년대계나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로 당을 운영하겠다는 공개 선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지난번 대선을 치를 때도 각종 정책을 놓고 잦은 말 바꾸기 행태를 보여 ‘정체가 뭐냐’는 논란과 불신을 자초했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거머쥐고 있어 국정에 얼마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대 야당의 대표가 신뢰를 저버린 일방통행의 정치를 한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대표의 독주를 견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대표는 다음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주자로도 입지를 굳힌 터다. ‘이재명의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