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항공사인 독일의 루프트한자 고객센터는 국내 여행객에게 ‘무한대기’ 콜센터로 악명이 높다. 평일 근무시간에도 상담을 받기 위해선 최소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을 기다려도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루프트한자와 함께 유럽 양대 항공사인 에어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면 통화연결음만 들릴 뿐 몇 시간 동안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올 들어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국내에서도 해외여행과 출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외국 항공사의 ‘갑질’을 호소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 역시 폭증하고 있다. 부실한 서비스뿐 아니라 연착과 결항에 따른 불편도 잇따르고 있다.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IFA)에 참석했던 국내 대기업 직원 수십 명은 루프트한자의 부실한 서비스로 뮌헨공항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워야만 했다. 당초 이들은 베를린에서 출발해 뮌헨에서 환승한 뒤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베를린~뮌헨 항공편이 3시간가량 연착됐지만 뮌헨~인천 항공편은 이들을 태우지도 않은 채 떠나버린 것이다.
이달 초부터 시작된 루프트한자 조종사 파업으로 하루 수백 편의 항공편 결항도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사전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항공편을 취소하면서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지난 3일엔 뮌헨에 착륙 예정이던 한 유럽 항공사 비행기가 기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근 공항에 착륙해 비상급유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외항사들의 갑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소비자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외항사를 이용하면 국내 항공사 서비스가 얼마나 훌륭한지 새삼 비교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승인을 받기 위해 미국·유럽 노선 운수권과 슬롯을 외항사에 내주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미국·유럽 경쟁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대체 항공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가 이들 장거리 노선을 운항할 역량이 없어 외항사가 유일한 대안이다.
외항사들이 국내 항공사를 대신해 미국·유럽 노선에 추가 취항하면 서비스 개선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그동안 외항사 갑질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심해졌다는 점이다. 이런 갑질을 국내 소비자들이 추가로 감당해야 한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