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대출 2년새 6배로"…네이버 손잡고 '지방 족쇄' 벗는 전북은행 [긱스]

입력 2022-09-14 04:00
수정 2022-09-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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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네이버가 금융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을 때 금융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2020년 6월 미래에셋증권과 협업해 출시한 '미래에셋 네이버 통장'을 시작으로 '미래에셋캐피탈 스마트스토어 사업자대출', 금융 마이데이터 서비스, 네이버페이 후불결제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선보여왔다. 사실상 예금인 CMA통장부터 신용공여, '금융의 꽃'이라 불리는 대출까지 금융의 핵심 서비스 라인업을 모두 갖춘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파이낸셜은 이 과정에서 직접 금융업 라이센스를 따는 대신 기존 금융사와 제휴하는 방식을 택했다. 까다로운 인터넷은행 허가를 받은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와는 다른 접근법이었다. 엄격한 규제에 묶인 기존 금융사들로서는 방대한 이용자 기반을 갖춘 네이버가 독점적인 금융 플랫폼의 지위를 노리고 금융업에 손쉽게 '우회 진출'한다는 불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이런 눈총에 대해 줄곧 "금융권과 협력하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시간이 흘러 "금융사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네이버파이낸셜의 약속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파트너십의 주인공은 전북은행이다. 지방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서울에 '언택트금융센터'를 설립하고 디지털 전환과 비대면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어온 전북은행은 네이버파이낸셜과 손을 잡으며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7월 디지털금융 업무협약을 맺은 전북은행과 네이버파이낸셜은 올 4월 '네이버페이 X JB 적금'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스마트플레이스 사업자 대출'을 함께 출시했다. 은행권에서도 서민금융 실적이 압도적으로 높은 전북은행은 네이버를 통해 중·저신용 사업자를 위한 은행 대출을 더 많은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전국적인 사용자 기반을 갖춘 네이버를 발판으로 지방은행의 지역적 한계도 넘어설 수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조만간 출시할 사업자대출 비교 서비스에도 전북은행은 일찌감치 참여를 확정했다.

정동필 전북은행 언택트금융센터장은 "그동안 은행권과 빅테크가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여왔지만, 서로를 경쟁 상대가 아닌 파트너로 인식하고 협업한다면 이제까지 없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서 단 1초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과 자본을 투입하는 네이버파이낸셜과 협업하면서 디지털 금융의 목적과 운영 방식 등에 있어서도 얻을 점이 많다"고 말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의 대출 서비스를 총괄하는 김태경 리더는 "금융사를 갖고 있지 않은 플랫폼 업체로서 네이버파이낸셜은 금융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가치를 전달하는 회사"라며 "그중에서도 서민금융 역량이 가장 뛰어난 전북은행이 최적의 파트너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가장 크게 '윈윈'할 수 있는 지방은행과의 협력을 앞으로 더 강화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디지털 전환에 '진심'인 전북은행전북은행은 네이버파이낸셜과 파트너십을 맺기 이전부터 디지털 전환에 열을 올렸다. 2019년에는 지방은행 최초로 'JB 사이버 영업점'을 만들었고 지난해 1월에는 서울에 언택트금융센터를 세웠다. 직원 35명 규모의 언택트금융센터는 비대면 영업부터 제휴, 상품 모니터링 등 전북은행 디지털 영업의 '프런트 오피스'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방은행 가운데 서울에 디지털 영업의 첨병 역할을 할 거점을 만든 곳은 전북은행이 처음이다. 김태경 리더는 "이런 상설 조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회사의 디지털 투자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에 제휴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정동필 센터장은 "빅테크·핀테크 업체들은 대부분 서울 강남이나 판교, 분당 등에 몰려있기 때문에 이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고객 기반이 상대적으로 작고 투자 여력도 부족한 지방은행으로서는 디지털 투자에 몇백 몇천억 원씩 투자하기가 어렵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데 실상은 열악한 게 현실이죠. 또 편리한 디지털 금융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앱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단 몇 초라도 기다리게 되면 바로 이탈합니다. 이미 최적화된 디지털 금융 프로세스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고, 디지털 마케팅 경험도 풍부한 빅테크·핀테크와 협업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본 이유입니다."

전북은행은 네이버파이낸셜 외에도 토스 카카오페이 핀다 핀크 핀마트 등 여러 빅테크·핀테크 업체와 적극적으로 협업해왔다. 성과도 확실했다. 2020년 9월 3400억원이었던 전북은행의 비대면 대출 잔액은 지난 7월 기준 2조원으로 급증했다. 약 2년 만에 여섯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네이버파이낸셜 "수익성보단 사용성이 우선" 다양한 제휴 파트너 중에서도 전북은행이 적금, 대출 등 금융 상품을 함께 설계하고 판매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은 네이버파이낸셜이 유일하다. 정 센터장은 그 이유에 대해 "네이버파이낸셜은 수수료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네이버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며 "상업성보다는 소비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공동의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전북은행, 우리은행이 지난 6월 함께 출시한 '스마트플레이스 사업자 대출'이 그 사례다. 스마트플레이스 대출은 네이버파이낸셜이 최저 연 4.4~5.9% 금리로 두 은행의 무담보 신용대출 상품을 중개해주는 서비스다. 스마트플레이스 플랫폼에 가게를 등록하고 직접 관리하는 개인사업자 약 250만 명이 대상이다.

대출을 원하는 사업자는 신청 한 번으로 두 은행의 스마트플레이스 전용 신용대출 상품과 전북은행을 통한 정책금융상품 '햇살론 뱅크' '햇살론 15' 등 총 네 가지 대출상품의 확정금리와 한도를 1분 안에 확인할 수 있다. 공시된 최저금리만 알려주는 다른 비교 서비스와 다른 점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이를 위해 미리 대출 심사에 필요한 신청자의 정보를 각 금융사로부터 스크래핑해온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본인인증과 대출 서류 자동 제출 프로세스도 네이버파이낸셜이 새로 개발했다. 개발 비용과 스크래핑 비용은 모두 네이버파이낸셜이 부담한다.

정 센터장은 "통상적인 제휴 관계에선 플랫폼 업체가 각종 비용을 금융사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네이버파이낸셜은 '사용성을 위해 수익은 포기하겠다'는 방침이 확고하다"며 "금융사 입장에선 이런 작은 요소들이 큰 차이"라고 말했다. 전북은행 "지방 한계 넘어 모두의 금융 사다리 될 것" 전북은행이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그 어느 은행보다 '핀테크 친화적'인 은행으로 거듭난 데에는 여러 배경이 있다. 첫 번째는 지역적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전북 지역 총생산 규모는 전국의 3%에 불과하다. 지역 경제 부진은 금융 수요에도 치명적이다. 전북은행의 대출 규모는 올 3월말 기준 15조7116억원으로 5대 지방은행 중 가장 작다. 정 센터장은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성장성을 확보하려면 디지털 금융 혁신을 통해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전북은행은 방대한 고객 기반을 보유한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협업을 통해 디지털 영업 확대의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 두 회사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북은행을 통해 나간 스마트플레이스 대출의 96.8%는 전북 외 지역의 대출자가 받아갔다. 김태경 리더는 "향후 사업자대출 비교 서비스가 개시되면 역외 실적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협업을 통해 '중소금융 강소은행'으로서의 역할을 더 단단히 하는 것도 전북은행의 목표다. 1금융권과 2금융권 사이의 금리 절벽을 해소하고 저소득 중저신용자를 고신용자로 이끌어주는 금융 사다리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북은행이 스마트플레이스 대출에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 15'와 '햇살론 뱅크'를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햇살론 15는 금리 연 15.9%, 햇살론 뱅크는 금리 연 8~9%대의 중·저신용자 대출상품이다. 기존에는 은행 문턱을 못 넘었던 저신용자도 우선 전북은행 햇살론을 통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성실 상환을 하면 점차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사다리를 만들어주겠다는 취지다.

전북은행은 향후 스마트플레이스 고금리 대출자 중 성실상환자를 위해 금리 연 7%대의 자체 신용대출 상품 'JBNF 성실상환론(가칭)'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정 센터장은 "금리 연 15.9% 대출에서 시작해 성실하게 상환하면 연 7%대까지 이자비용을 절반 가량 낮춰드릴 수 있도록 상품을 설계할 것"이라며 "네이버파이낸셜과 함께 금융의 사회적 역할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김 리더는 "서민금융상품 점유율 96%인 전북은행은 중금리 대출 시장에서 압도적인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네이버파이낸셜 입장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실제 소득이 적고 업력이 짧아 기존에는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영세 자영업자들도 스마트플레이스 대출에선 승인율이 높다. 8월 말 기준 스마트플레이스 대출자의 34%는 연소득이 1000만원 미만이었다.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미만도 25%에 달했다. 업력이 2년 미만인 사업자도 34%나 됐다. 보통 은행에선 업력이 2년 미만인 사업자는 전년도 매출이 확정되지 않으면 대출 신청조차 하기 어렵다. 네이버파이낸셜 "지방은행 파트너십 강화"네이버파이낸셜 내에는 지방은행 태스크포스(TF)가 있다. 대출은 물론 수신, 법무, 대관 등 주요 서비스별 팀 리더가 모두 참여하는 TF다. TF장은 네이버파이낸셜의 금융사업 총괄이 맡고 있다. 김 리더는 "그만큼 네이버파이낸셜이 지방은행과의 협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조직"이라고 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파트너십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상대에게 기여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맺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네이버파이낸셜을 통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지방은행은 최적의 파트너인 셈이죠. 금융 서비스를 직접 제공할 수 없는 네이버파이낸셜도 지방은행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고요."

정 센터장은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협업 경험을 통해 전북은행도 자체적으로 디지털 금융의 편의성을 높여갈 수 있을 것"이라며 "네이버파이낸셜의 고객 기반과 디지털 역량을 적극 활용하고 융합해 '서민금융 대표 은행'으로서의 차별성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