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력’ 사용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담대한 구상’ 등 정부의 대북정책을 무력화함과 동시에 한·미 당국에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12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우리의 핵 그 자체를 제거해 버리자는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핵을 내려놓게 하고 자위권 행사력까지 포기 또는 열세하게 만들어 우리 정권을 어느 때든 붕괴시켜 버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어떤 극난한 환경에 처한다 해도 미국이 조성해놓은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형세하에서, 더욱이 핵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의 사명과 구성 등을 규정한 법령을 제정했다. 모두 11조로 구성된 법령 중 3조(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와 6조(핵무기의 사용 조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북한은 3조에서 “국가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 방안에 따라 도발 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 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밝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미가 김정은을 제거하기 위한 ‘참수작전’을 추진하면 한국과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이 실행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6조에선 ‘(북한에)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 핵무기 사용의 구체적 내용을 열거했다. 이는 한국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구축 중인 ‘3축 체계’에 대응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북한의 ‘핵 법제화’는 정부의 대북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의 진전을 더 어렵게 할 전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무기 고도화의 불가역성과 핵보유국의 기정사실화를 노린 것”이라며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근간을 흔들고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향후 7차 핵실험 등을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북한이 10월 16일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이후 핵실험을 단행해 연설 내용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