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업체가 낙농가로부터 구매하는 원유(原乳·우유의 원료) 가격이 L당 1100원에서 1150원으로 오른다. 역대 최대폭 상승으로 이르면 이달부터 우유 소비자 가격이 한 번에 L당 300~500원 정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익성 악화 시달리는 우유업계8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업계 등에 따르면 우유 시장 참여자들의 협의체인 낙농진흥회는 이달 중순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수준의 원유 가격 상승폭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L당 1100원인 원유 가격은 50원(4.5%) 오른 1150원이 될 전망이다. 새 원유 가격은 이사회가 최종 협의를 끝내는 시점부터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낙농가는 원유 가격을 대폭 올리는 대신 마시는 우유와 가공유 등 용도에 따라 가격을 둘로 나누는 용도별 가격차등제 도입에 찬성하기로 했다. 가공유 가격은 정부 제시안과 같이 L당 800원이 될 전망이다. 쉽게 말해 흰우유 등을 만드는 원유는 L당 1150원, 치즈 등을 제조하는 가공유는 800원에 우유 업체에 납품하는 것이다.
원유 가격 50원 인상은 역대 최대 상승폭이다. 원유 가격은 원유가격 연동제를 도입한 2013년 1071원에서 해마다 10~20원의 등락을 반복했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생산비 상승분을 고려한 가격에 우유 업체가 원유를 사는 제도다.
원유값 대폭 인상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유업계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올 1~6월 상위 5개 우유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0%를 기록했다. 식품회사 평균 영업이익률 5.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흰 우유 부문은 매년 적자다. 출산율 하락과 인구 감소로 우유 소비층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다.
수요가 줄다 보니 소비자 판매가 역시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매일유업에 따르면 L당 흰우유 기준 평균 출고가는 2019년 1622원에서 2021년 1614원으로 하락했다. ○사료값 인상에 신음하는 낙농가낙농가는 낙농가대로 고충이 크다. 사료값 폭등에 따른 생산 원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젖소를 키워 우유를 만드는 낙농업이 처음부터 수지가 안 맞는 사업은 아니었다. 일단 진입장벽이 높았다. 소를 키울 수 있는 넓은 땅과 젖소 구매비용 등만 해도 15억원 이상은 필요하다. 이후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 정부 권한(쿼터제)을 받아야 한다. 전국의 원유 생산량을 정해놨기 때문에 쿼터가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 권리를 사와야 한다. 초기 투자 금액만 20억원 이상이다. 그럼에도 낙농업은 소위 돈이 남는 장사였다. 매출 대비 20~25% 정도는 남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30년 동안 목장을 운영한 정모씨는 ‘폐업’을 준비 중이다. 젖소 70마리를 키우는 정씨는 한 달에 7만1400L의 우유를 생산한다. 원유 납품가격인 1100원을 곱하면 한 달에 7854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올해는 매출은 예년과 비슷하지만 비용이 확 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월평균 사료값 4000만원과 두 명의 외국인 근로자 비용 월 500만원, 월 200만원 안팎의 치료비, 보험료 등을 제하면 800만원 정도를 남겼다. 그러나 현재는 사료비만 월 6000만원이 들어간다. 정씨는 우유업계의 힘든 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생각만 하고 원유가격을 높일 순 없다”고 말했다.
낙농가와 우유업계 모두 공멸(共滅)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용도별 가격차등제다. 현재 용도와 관계없이 마시는 우유(음용유) 기준으로만 납품이 이뤄지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 둘로 나눠 가격을 차등화하는 제도다. 이제까지 우유업계는 치즈를 만들더라도 흰우유 가격(1100원)을 지급하고 원유를 사야 했다. 해외 업체들은 L당 300~400원에 가공유를 구입해 치즈 등을 제조한다.
낙농업계는 제도 도입에 극렬히 반발했다. 사료값이 올라 원유값을 더 올려야 할 판인데 정부안대로면 오히려 소득이 감소한다는 게 이유였다. 평행선을 계속 달릴 것 같았던 양측은 원유가 대폭 인상과 차등가격제 도입으로 합의점을 찾게 됐다.
정부는 식량 주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원유 가격 인상이 우유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낙농가의 어려움을 소비자가 떠안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남양주=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