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 '묘수' 없는 정부, 5대 딜레마

입력 2022-09-08 16:42
수정 2022-09-09 01:08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이 쓸 카드는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강도 긴축에 대응해 한은이 또다시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간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고, 시장 개입은 자칫 외환보유액만 탕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도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8일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에서 “최근 환율이 상승했지만 경기·물가 상황이 큰 변화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밝힌 점진적 금리 인상 원칙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빅스텝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최근 투자와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 모멘텀이 점차 둔화하고 있다”며 “국내 경기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빅스텝 등 고강도 긴축은 경기에 하방 압력을 더하게 된다. 임계치에 다다른 가계부채도 한은이 빅스텝을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이다.

일각에선 한은의 이 같은 입장이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이 오르는 것은 우리가 금리 인상을 충분히 할 수 없다는 시그널을 계속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와 한은의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도 부작용이 적지 않다.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도하더라도 환율 상승 흐름을 꺾지 못한 채 외환보유액만 소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4692억달러)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줄곧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267억달러 줄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와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환율은 시장 수급에 맡기고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재 원화 약세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강달러 여파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만을 위해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가능성은 낮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현 상황에서 한·미 통화스와프로 달러 강세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오해”라고 했다. 이 부총재보도 이날 “스와프 체결이 우리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Fed가 합의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환헤지도 쉽지 않은 선택지다. 국민연금은 매년 200억~300억달러가량의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면서 환헤지를 하지 않아 환율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달러 강세에 따른 환차익 덕분에 올해 손실을 일부 만회했다고 항변한다.

그나마 구두개입이 쓸 수 있는 카드지만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단점이다. 추 부총리와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전날 “필요한 경우 적절한 시장 안정조치를 하겠다”며 구두개입을 했지만 이날 원·달러 환율은 12원50전 오르며 13년여 만에 처음으로 1380원을 돌파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