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30만원"…포항 수해민 울리는 견인차들

입력 2022-09-08 16:39
수정 2022-09-16 19:00

8일 오후 1시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 앞. 견인차 수십 대가 자동차 경주를 하듯 굉음을 내며 8차선 도로를 질주했다. 침수 피해가 유독 컸던 포항 남구 인덕동 일대에 버려진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서다.

대구에서 왔다는 한 견인차 운전자는 “보험사에 전화해도 견인차가 오지 않으니 개인적으로 연락이 많이 온다”며 “지금 도로 위에 방치된 차량이 전부 돈인 셈”이라고 말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가장 큰 침수 피해를 본 포항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백 대의 견인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침수차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도로를 고속 질주하는 경우도 잦아 소음 피해는 물론 안전사고 위험까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소의 두 배가 넘는 ‘배짱 요금’으로 피해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포항 지역은 말 그대로 견인차 업계의 ‘장터’나 마찬가지다. ‘포항에 가면 침수차가 길거리에 널려 있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났다. 손해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포항에 불어닥친 힌남노로 전국에서 6762건의 차량 침수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포항과 인근 울산, 경주 등에 집중돼 있다는 게 견인차 업계의 판단이다.


현장 취재 결과 포항시에서 영업 중인 사설 구난업체 다섯 곳 모두 ㎞당 2만~3만원의 견인료를 요구했다. 현장에서 장비를 채우는 등 작업비를 합치면 10㎞ 이동하는 데 30만원 넘게 청구될 수 있다는 얘기다. 침수 차량이 인도나 지하 주차장에 있으면 이 가격에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구난형 특수자동차 적정 운임·요금표에는 2.5t 이하 차량인 승용차의 견인 비용은 10㎞ 미만인 경우 7만2200원으로 책정돼 있다. 포항시 일대에서 영업하고 있는 개인 견인업체가 네 배 이상 비싼 셈이다.


포항시에는 차량 서비스센터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 기본적으로 이동 거리가 길다. 현대자동차 서비스센터가 다섯 곳, 벤츠와 BMW, 아우디 서비스센터가 한 곳씩 있는데 침수 피해가 큰 지역과는 10㎞ 이상 떨어져 있다. 견인 서비스가 필요한 침수 차량 차주들이 꼼짝없이 ‘요금 폭탄’을 맞게 되는 셈이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사는 신모씨(48)는 “침수된 차량을 빨리 수리해야 하는데 보험사는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한다”며 “사설 구난 업체를 불러 12㎞ 이동하는 데 28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현지 보험사들도 쇄도하는 견인차 출동 요청을 다 소화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7일부터 수해 복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견인차 출동 신고가 몰려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포항에만 500여 대가 출동했는데 침수 차량이 많아 역부족인 상황이었다”며 “8일 오전부터는 신고가 줄어 24시간 안에 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구난 차량 운전자들은 폐차 대행까지 알선하고 있다. 폐차하는 차량은 따로 구난 비용을 받지 않는다고 안내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구난 차량 운전자의 폐차 알선 행위는 불법이다. 국토부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자동차 해체재활용업자가 아닌 사람이 영업용 목적으로 폐차를 수집해 알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고 있다. 포항시 경찰 관계자는 “구난차들이 비용을 높게 받아도 사기 친 게 아닌 이상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고 따로 단속을 나설 수도 없다”고 말했다.

포항=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