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현대백화점 추석 선물세트 카탈로그에는 낯선 상품이 등장했다. 3만5000원짜리 양말 선물세트가 그 주인공. 값비싼 상품이 주를 이루는 카탈로그에 양말 선물세트가 들어간 것은 백화점 내부에서조차 “이례적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현대백화점에 양말 선물세트를 만들어 납품한 사람은 김지은 옐로우삭스 대표(38·사진)다. 김 대표는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30세대들이 자주 찾는 더현대서울 등에서 행사를 열 때마다 양말만으로 매출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40여 년 전 경기 의정부에 터를 잡고 문을 연 30평 남짓한 양말공장을 이어받았다. 1980년대 입생로랑, 닥스 등 유명 브랜드의 양말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들어 납품하며 잘나가던 김 대표 아버지의 공장은 외환위기와 함께 고꾸라졌다. 이후 베트남과 중국 등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내세운 해외 공장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양말을 비롯한 국내 봉제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김 대표는 “손때 묻은 공장을 닫을지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2013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장을 이어받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쓰러져가는 공장을 살리기 위해 우선 OEM 구조에서 벗어나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40년 넘게 양말을 만든 아버지와 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가 힘을 합쳐 ‘질 좋고 예쁜’ 양말을 생산했지만 판로를 찾지 못했다. ‘양말은 다 똑같은 양말’이라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중국산 저가 양말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판로 확보에 애를 먹던 김 대표는 2년 전 현대백화점의 ‘위마켓’을 만나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위마켓은 백화점에 입점할 만큼의 규모는 안 되지만 상품력이 좋은 소상공인에게 기회를 주는 상생 팝업스토어다. 김 대표는 “무작정 위마켓 담당자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점시켜주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두서없이 메시지를 보냈는데 담당자가 흔쾌히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고 회상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조그만 매대에서 한 첫 행사에서 김 대표는 2주일 만에 2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른 업체 평균 매출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해 말 더현대서울에선 2주일간 47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위마켓에 입점한 브랜드 중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옐로우삭스 양말의 인기 비결은 세련된 디자인을 넘어서는 착용감이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옐로우삭스는 패션 양말임에도 고급 정장 양말을 만들 때 사용하는 고밀도 편직기계를 사용해 제작한 게 특징이다.
김 대표는 양말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제품군 전반으로 상품 영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옐로우삭스의 가능성을 높게 본 현대백화점이 중소기업과의 상생 차원에서 김 대표와 손잡고 함께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외 진출 목표도 세웠다. 김 대표는 “한국 양말산업은 뛰어난 기술력에도 유명 해외 패션 브랜드의 OEM 구조에 머물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밀려 명맥이 끊어져 가는 상황”이라며 “유럽과 일본 등 패션 본고장에 수출해 양말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의정부=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