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서 차로 한시간여 거리의 나라현에는 꼬불꼬불한 숲길 끝에 나오는 골프장이 있다. 입구에는 다보탑을 그대로 재현한 석탑이 서 있고 한옥 팔각정으로 지어진 그늘집이 골퍼들을 반긴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곰탕과 냉면. 일본에 있지만 곳곳에 한국의 향취가 묻어난다. 8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메이저 대회인 신한동해오픈이 개한 코마CC(파71·7065야드)가 주인공이다.
코리안투어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아시안투어 공동으로 열리는 신한동해오픈이 8일 코마CC에서 막을 올렸다. 나흘간 치러지는 이번 대회에서는 각 투어를 대표하는 40명의 선수가 총상금 14억원, 우승상금 2억5200만원을 두고 승부를 펼친다.
이날 1라운드에서는 캐나다 동포 이태훈(22)이 보기 없이 버디만 9개 잡아내며 9언더파 62타를 쳐 단독선두에 올랐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시우(27)는 버디 7개, 보기 1개로 6언더파 65타를 쳐 공동 4위(오후 2시 430분 기준)로 경기를 마쳤다.
◆재일동포의 모국사랑이 담긴 대회올해로 38회를 맞는 신한동해오픈이 해외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타이틀 스폰서인 신한금융그룹 창업 4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 기업인들의 조국사랑을 기리기 위해 일본을 개최지로 택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재일동포의 자금을 바탕으로 시작된 회사다.
이 대회는 1981년 시작됐다.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을 주축으로 일본 간사이지방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설립했다. 골프를 통해 모국과의 친선을 도모하고 한국 골프를 지원하자는 뜻을 담았다.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총상금 1500만원의 '동해오픈'을 설립했다. 당시 국내 골프 대회로는 최고 규모였다.
간사이 지역에서 조국을 보려면 동해 쪽을 봐야하기에, 그들에게 '동해'는 곧 조국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8회까지 재일동포 사업가들의 후원으로 운영된 이 대회는 1989년 9회부터 신한은행이 타이틀스폰서를 맡으며 '신한동해오픈'으로 간판을 바꿨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코마CC는 신한동해오픈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이 명예회장이 만든 곳으로, 여기서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동해오픈 창설을 결의했다. 골프장 이름인 코마는 '고려(高麗)'의 일본어 독음이다. 이름에서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면에 내세우며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골프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재일동포들이 일본 내에서 사업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골프가 필수였지만 당시 적잖은 차별에 시달리던 재일동포들이 일본 골프장 회원권을 사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간사이지방 재일동포 기업인의 '큰 형님'이던 이 명예회장이 나섰다. 오사카 쓰루하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로 사업을 시작해 재일동포를 위한 교민은행 신한은행을 설립한 그는 "재일동포 기업인도 당당하게 골프를 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며 오사카, 교토 등에서 멀지 않은 곳에 터를 마련했다. 설계는 당시 최고 스타 개리 플레이어에게 맡겼다.
코마CC는 2017년부터 3년 연속 일본 100대 최고 골프장에 선정될 정도로 명문코스로 평가받고 있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이 명예회장은 한국의 색깔을 지키면서도 기존의 일본 골프장보다 더 좋은 코스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며 "코마CC는 재일동포들의 정신이 담긴 곳"이라고 설명했다. ◆최대 미션 "페어웨이 지켜라"1라운드를 마친 선수들은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7년 이 대회 우승자인 이태훈은 9언더파 62타를 쳐 코스레코드를 세웠다. 그는 "2017년 이 대회에서 우승해 좋은 기억이 많아 기분좋게 출전했다"며 "코스 컨디션도 좋고 그린스피드가 나와 딱 맞다. 노보기플레이를 펼친 것에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 대회에서 타이틀 방어와 코리안투어 3주연속 우승의 대기록에 도전하는 서요섭(26)은 이날 2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아시안투어 4승의 시브 카푸르(40·인도), 일본투어 7승이자 2018년 일본투어 상금왕 슈고 이마히라(30·일본)와 같은 조에서 경기한 서요섭은 이날 전반에 보기없이 버디만 4개 잡아내며 순항했다. 하지만 후반 4번홀(파4)에서 티샷 OB로 더블보기를 기록해 대기록 달성에 제동이 걸렸다. 서요섭은 경기를 마친 뒤 "코스가 길지 않고 그린이 소프트 해 러프에서도 잘 받아주지만 페어웨이가 넓지 않아 위험하다"며 "앞으로 얼마나 페어웨이를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