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인 138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추가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강(强)달러 상황에서 원화 약세를 방어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 금리 인상 이외에는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 부실 위험이 커지고, 경기 둔화까지 현실화하면 오히려 원화 약세(환율 상승)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것은 우리가 금리 인상을 충분히 할 수 없다는 시그널을 계속 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미 금리 역전이 현실화하면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화 가치 안정화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미 통화스와프지만, 이건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기준금리를 더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미 간 금리 역전이 뻔한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다"며 "비상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서라도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한국과 미국(상단 기준)의 기준금리는 연 2.5%로 같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이달 20~21일(현지시간)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한·미 간 금리가 0.75%포인트 차이로 역전된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당분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8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기조"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말에는 한·미 금리차가 1%포인트까지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최근 들어 상승세가 가팔라지는 게 한·미 간 금리 역전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배경이다. 원·달러 환율 변동률은 올해 2분기 12.5%에서 7~8월 중에는 14.0%로 상승 폭이 확대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간 금리 차가 클수록 환율은 상승한다"며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금리 역전 기간이 짧아야 하고 기준금리를 충분히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이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박도 거세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금통위에서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을 단행했다. 한은은 8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높은 물가 오름세 지속 등으로 주요국의 성장세가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주요국 대부분은 고물가에 대응해 빅스텝 인상을 결정했다"며 "고인플레이션 대응 과정에서 단기적인 성장 손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며,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물가를 빨리 안정시키는 것이 성장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이익이 더 클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빅스텝은 불가피했지만, 빅스텝이 경제가 성장하는 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내 경제는 상반기까지 민간 소비를 중심으로 잠재 수준을 상회하는 양호한 성장 흐름을 나타내었으나 최근 들어 투자와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 모멘텀이 점차 둔화하는 모습"이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산에 대응한 주요국의 정책금리 인상 가속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성장경로에 대한 하방 압력이 증대됐다"고 언급했다.
더구나 한국은 기준금리가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금리와의 연동성이 강하다.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신용위험 증가와 투자위축을 유발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며 "당분간 높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겠지만, 글로벌 총수요 증가세가 둔화하기 시작한 만큼 향후 기준금리의 인상 속도를 신중하게 조절하면서 성장 손실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가계대출의 변동금리가 80%에 달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대출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며 "가계대출 부실이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는 침체가 불 보듯 하다"고 경고했다. 윤여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유럽 중앙은행(ECB)의 자이언트스텝 예고에도 유로화 강세는 눈에 띄지 않았다"며 "현재는 강달러 현상에 따른 원화 약세이기 때문에 환율 방어를 위한 기준금리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