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 구조 논란 휘말린 포르쉐, 시총 100兆 넘을까

입력 2022-09-07 18:09
이 기사는 09월 07일 18:0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독일 폭스바겐그룹 산하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가 올가을 증시에 입성할 전망입니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6일 폭스바겐 AG의 주가는 전일 대비 5.89% 상승했습니다.

시장에서는 포르쉐의 기업가치를 600억 유로에서 850억원 유로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82조원에서 최대 11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폭스바겐그룹의 시가총액인 133조원과 견줄만한 수준입니다. 럭셔리카 브랜드로 영업 이익률이 높은 만큼 기업가치가 높게 책정됐다는 평가입니다. 포르쉐의 기업가치가 100조원을 넘긴다면 독일 역사상 최대 기업공개(IPO) 사례가 됩니다. 1999년 이탈리아 전력회사 에넬이 상장한 이후 유럽 IPO 시장에서도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공모 규모가 크다 보니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데요. 다만 유럽 에너지 대란과 금리 상승,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유럽 주식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변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IPO 시장이 위축됐고 자금 시장이 경색된 상황이어서 흥행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폭스바겐 측도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상장 시기가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투자자의 반응이 예상보다 저조할 경우 상장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모 구조와 관련한 논란이 제기되면서 흥행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폭스바겐그룹은 상장을 준비하기 위해 포르쉐의 주식을 보통주 50%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50%로 분할했습니다. 이중 우선주의 25%를 공모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내놓을 계획입니다. 결과적으로 포르쉐 주식의 12.5%가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제공되지만, 의결권은 가져가지 못하는 셈입니다.

반면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지주회사인 포르쉐 오토모빌 홀딩 SE는 이번 상장 과정에서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 25%+1주를 가져가기로 했는데요. 포르쉐 가문은 이 지주회사를 통해 폭스바겐그룹의 지분을 과반을 보유한 최대 주주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공모 구조를 설계한 것은 상장 후 자신들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건데요. 시장에서는 포르쉐-피에히 가문이 경영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사회와 주주 회의에서 주요 전략적 결정을 통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회사의 기업가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의결권이 없는 주식만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공모 구조가 짜인다면 주식 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포르쉐 가문이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헨드릭 슈미트 도이치뱅크 자산운용(DWS)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도 "불안한 시장 환경에서 IPO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단지 창업자 일가인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포르쉐 측은 IPO 성공을 위해 주요 '큰 손'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카타르 투자청이 포르쉐의 우선주 4.99%를 인수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폭스바겐그룹은 배당금 카드도 꺼내 들었습니다. 포르쉐가 성공적으로 상장한다면 내년 초 공모를 통해 얻은 이익의 49%를 특별 배당금 형태로 폭스바겐 주주들에게 배분하겠다고 밝힌 겁니다.

포르쉐는 상장으로 조달한 공모 자금을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개발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포르쉐의 상장 배경에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는 상황입니다. 일부 투자자들은 상장 후 새로운 포르쉐 CEO를 선임하고 폭스바겐그룹과 분리된 경영 구조를 갖춰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CEO가 포르쉐 CEO를 겸임하고 있어 이해관계 충돌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포르쉐는 과연 얼마의 몸값으로 증시에 입성할 수 있을까요? 포르쉐는 이달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시작하고 이르면 이달 말 공모가가 공개될 예정입니다. 포르쉐가 100조원으로 평가받는다면 미국 테슬라(시가총액 1193조원), 일본 도요타(320조원), 독일 폭스바겐(132조원) 중국 BYD(102조원)에 이어 자동차 제조사 중 시가총액 상위 5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예상보다 흥행이 저조하다면 포드(84조원), 메르세데스 벤츠(81조) 등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포르쉐의 상장이 유럽 증시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지,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