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회수시설’ 건설 문제로 서울시와 마포구가 대립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참여한 입지선정 위원회를 거친 서울시 결정에 마포구가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 시설 내 생활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서는 게 주된 쟁점이다. 마포구 쪽에선 펄쩍 뛰겠지만, ‘기피 시설’ 혹은 ‘혐오 시설’의 관내 수용 여부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님비 현상’과도 무관하지는 않는 사안이기도 하다. 폐기물 처리시설 지역 내 증설인가, 아예 신설인가 하는 등의 논쟁점도 있다. 서울시와 마포구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인접한 고양시까지 “사전 협의가 없었다”“(서울시의) 일방적 발표를 강력 규탄한다”고 나서 해법은 복차 방정식처럼 돼 간다.
이 문제는 어떻게 진행될까. 어떻게 풀어야할 것인가. ‘상암동 소각장 갈등’ 문제에서는 세 가지 정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한국 지방자치제도가 한 단계 성숙 발전할 것인지, 이쯤서 퇴보하고 말 것인지와 관련된 문제로 보인다.
못난 정치처럼 결국 법원으로 달려갈까첫째, 기초지방자치단체인 마포구와 광역자치단체인 서울시가 이번 대립 혹은 대치 혹은 갈등을 양자 간에 자체적으로 풀 수 있을지 여부다. 단적으로 말해 법원으로 가지 않고, 혹은 중앙 정부의 개입 없이 해결해낼 것인가다. 행정법원 등으로 가면 오히려 쉬울 수도 있지만, 서로가 극한 대립에서 물러서지 않고 대법원 등으로 계속 가면 불필요한 비용 지불 차원 이상의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시민생활에 꼭 필요한, 그것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생활폐기물 처리 시설 미미로 인한 전체 시민생활의 불편과 안전 위협 문제가 특정 구와 시의 대립에서 어떻게 처리될 지가 그런 것이다.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이준석 문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법원으로 달려가면서 국민적 우려가 컸다. 정치로 풀어야할 사안을, 정치가 정치 구실을 못해 법원으로 달려간 게 근본 문제였다. 행정도 행정 내부에서 문제를 원만히 해결 못해 사법부로 달려간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법원에서 좌우하게 될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리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서로가 각자의 고유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 외에 각각의 영역에서 자율적 책임을 지라는 취지도 있다.
둘째, 결국 이 사안도 ‘비용의 문제’가 될 것인가다. 쉽게 말해 돈으로 해결될 것이냐다. 그간 숱한 지역형 갈등 현안에서 그렇게 해결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에도 서울시는 100억원 규모의 주민복지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당장 두 가지 문제가 보인다. 민선 8기가 출범한 지 몇 달이나 됐나. 시장도 구청장도 7월1일 사무를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두 달여 지났다. 그런데도 이 정도 하나를 당사자 간 협의로 문제를 못 푼다? 100억도 서울시가 일차적으로 한번 던져본 액수일 공산이 크다. 그러면 결국에는 얼마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갈등 때마다 ‘상급’ 혹은 ‘주무’기관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나. 그것이 30년 누적된 자치행정의 본질인가. 지자체는 그렇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산 외의 예산을 쓸 만큼 여유로운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돈을 동원하는 한국형 ‘추가 비용 의존 해법’원칙이라도 인정해야 하나. 의문이 계속 이어진다. 어떻든 돈 문제로 비화되기 전에 잘 풀리는 게 바람직하다. 옛 일까지 하나하나 거론하는 마포구 주민들의 억하심정 같은 답답함에는 충분히 공감도 된다. 그러면서 “또 비용 문제로 귀결되는 것인가”싶으면서 안타까움이 앞선다,
때로는 국책사업도 무위로 만드는 지자체, 자치 행정 용인 범위는?셋째, 행정조직과 각종 국가기관 간의 우열 내지는 서열에 대한 정립이 필요해졌다. 민주국가에서 선출 권력에는 사실 우열이나 상하관계가 없다. 각자의 역할과 법에 정해진 크고 작은 고유의 권한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과 울릉군수 사이가 상하관계가 아니듯이 마포구청장과 서울시장도 상하관계는 아니다. 이게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와 마포구라는 기관에서는 행정 권한에서 감시와 감독, 일부 감사권 행사의 관계 등이 분명히 있다. 당연히 법적인 권한이다. 문제의 상암동 자원회수시설의 부지선정부터 완공, 운영까지는 서울시의 권한이고, 해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포구가 의견을 내놓지 말라는 법도 없고, 자기 입장을 발표 못하게 하는 법은 더욱 없다. 이중의 지위인 주민으로써는 더욱 그렇다.
법적 권한과 한계, 견제와 균형, 자율과 양보는 어디까지 가능하며 해야 하는가. 여기서 행정 고유의 역할을 보게 된다. 물론 이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마포구와 서울시의 의견대립만 해도 간단치 않은데 인접한 고양시까지 정색을 하고 다가섰다. 인구 100만이 넘는 고양은 ‘특례시’다. 굳이 체급을 따지자면 구와 시 사이의 존재쯤 된다. 아마 마포구보다 상급단체라고 여길 것이며, 서울시에도 밀릴 게 없다고 자부할 것이다. 관찰자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해당 지자체에겐 이런 것도 소용없는 논리일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지자체와 중앙 정부 사이에도 일방적으로 강제하거나 명령 지시하기가 어려워졌다. 2019년 삼척시의 주민투표는 하나의 의미 있는 사례를 남겼다. 물론 바람직한 케이스라고 보기는 어려운 사례였다. 당시 민선 삼척시장은 중앙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정한 원자력발전소 부지를 논란의 와중에 찬반 주민투표에 부쳐 부결시켜버렸다. 주민투표의 정당성 논란에다 국가적으로도 놀라움이 컸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고양시까지 한 목소리 내기 시작하면 상암동의 한강 바로 건너 쪽 서울 강서구는 가만히 있을지 모를 일이다. 원론적 해법이지만, 차분히 대화로 풀어가는 게 여기서도 여전히 정석이다.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도, 잘 운용하면 생활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잘못 운용하면 갈등 비용만 키운다. 정치는 더 하지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