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세계 4대 연기금으로 총 900조원을 굴리고 있지만 정작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주요 연기금이 전문성을 강조하는 흐름에서 한국만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전문성 부족이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모수개혁과 함께 기금운용위를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 찾기 힘든 기금운용위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모두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5명이 당연직 위원이다. 정부 측 인사가 6명을 차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지역 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정부 측 인사 6명은 행정 전문가로, 기금운용의 전문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회의 참석도 부실하다. 기금운용위 회의록을 보면 지난해 열린 총 여섯 차례의 기금운용위 회의에서 기재부 차관과 산업부 차관은 각각 세 차례 참석에 그쳤고 고용부와 농식품부 차관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노동계가 추천한 3명의 근로자 대표도 전문성과 거리가 멀다. 허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그나마 ‘금융인 출신’이란 구색이라도 갖췄지만, 윤택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부산지하철노조 출신이고, 류기섭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장애인고용공단 노조 출신이다. 사용자 대표들 역시 주로 노사 관계 전문가들이다. 그나마 2명의 ‘관계 전문가’도 기금운용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실제 문재인 정부에선 당시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이태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이 기금운용위원으로 참여했지만 홍 전 원장은 노동경제학자 출신이며 이 원장은 금융과 관계없는 사회복지 학자다. 국민연금 한 전문가는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제대로 된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익률 높이려면 전문성 높여야기금운용위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도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해외 주요 공적 연기금과 달리 국내 기업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기업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기관투자가가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내세우며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3378건 중 ‘반대’가 549건(16%)에 달했다.
특히 시민단체나 노조에서 활동한 위원들은 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보다 기금 운용을 통해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연금 사회주의’에 더 관심을 두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위원의 비중이 높은 것도 문제다. 연금분야 한 전문가는 “정부가 개입하면 운용책임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당시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찬성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7억7000만달러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을 제기한 바 있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세계 주요 연기금의 핵심 트렌드는 전문성 강화”라며 “국민연금 개혁은 더 내고 덜 받는 모수개혁과 함께 기금운용위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은 주요 선진국 연기금과 비교했을 때 저조한 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달 발간한 ‘2021 회계연도 총수입 결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13.28%), 캐나다(13.66%), 일본(12.62%), 노르웨이(14.51%), 네덜란드(11.19%)의 수익률은 국민연금 수익률보다 0.33~3.65%포인트 높았다.
일각에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금통위는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한은 총재와 부총재 외에 상공회의소, 은행연합회 등에서 추천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지만 전문성이 중시된다.
곽용희/차준호/황정환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