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엄청난 피해와 희생에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태풍에 대한 정부와 우리 사회의 실상을 위기관리 차원에서 우선 급하게라도 성찰해서 기록해보고자 한다.
첫째, 태풍이란 외부 충격은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는 수많은 거짓, 불량, 부실, 얼렁뚱땅, 대충주의 등을 뿌리뽑힌 나무처럼 드러냈다. 황당한 재난과 사고들을 초래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하나하나 풀어내 고칠 것은 고치고 미래에 대비할 것은 대비해야 한다. 한두 가지 인상적인 사건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은 오히려 고질적인 내부 모습을 숨기려는 나쁜 결과를 빚는다.
둘째, 많은 사람이 인적재난과 자연재해를 나름 엄격하게 구별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오히려 위기관리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점들을 호도한다. 책임을 은폐하거나, 특정 산업의 이익에 봉사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보인다. 원인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대부분의 재해와 재난의 피해는 사람에 의해 더욱 커진다. 물의 흐름을 마구 바꿔놓고 수없이 많은 부자연스러운 인공구조물을 설치해놓은 상태에서 밀집돼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셋째, 대통령과 정부의 위기관리 리더십은 경계 차원에서 적절했다. 국민을 불필요한 불안에 떨게 하지도 않았으며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실무자들의 집중도를 흩트리지도 않았다. 일선 공무원들 근무의 동기와 태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표준을 보여준 것이다. 작년 잠깐의 폭설로 나라의 심장부인 서울 강남의 교통이 마비되고, 불과 한 달 전 집중호우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공무원은 없었다. 그때의 깊은 배신감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넷째, 전문가들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준수했다. 기상청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예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했다. 국민들의 위험 인지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줬다. 지난 4일 예보분석관은 “슬픔과 회한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주시길 부탁한다”고 했고, 기상청장은 “힌남노의 경로는 의미 없으며, 부디 12시간만 버텨달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식견에 더해 위기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전달해줬다. 또한 그간 축적된 재해 위기, 침수 위기, 해일 위기 등 다양한 정보가 제공됐다. 위기 정보에 기반한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과 행동이 위기관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면서 동시에 성과를 도모한다.
다섯째, 기후변화론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필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힌남노의 유사 이래 처음 있는 갈지자 태풍 경로를 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엄청나게 증대된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인류문명의 오랜 유산이었던 기존의 공학적 판단을 다시 새로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준 강수량, 기준 최고온도와 최저온도, 일사량, 지질, 만조 수량과 그 시기 및 주기 등 지구의 모든 자연현상에 대한 공학적 기준과 허용치를 지금보다 훨씬 넉넉히 잡아야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기상이변과 지진, 전염병과 향토병, 생태계 급변동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확인하고, 새로 설계해야 한다. 재공학(re-engineering)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폭우 이후 서울시의 배수관로 정비에 대한 논란이 이런 문제의식의 단초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모든 사회간접자본을 공간과 시간의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관찰하고 공학적 허용치를 훨씬 더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터이니, 국가적으로 섬세한 전략을 짜서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경제·사회·문화의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머물러야 한다. 학교와 직장을 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국가와 사회가 학교와 직장을 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희생을 대신 부담해주고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줘야 한다. 사회와 문화가 그런 방향으로 새로운 질서와 규율을 찾고 협의해야 한다. 이런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한 담론이 형성돼야 한다. 엄청난 위력의 힌남노 앞에서 걱정하고 조심했던 마음으로 돌아가 겸손하고 진실되게 교훈을 학습해 다음에는 이런 고통과 희생을 훨씬 더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