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샤넬이 지난달 제품 가격을 5% 올렸다. 시계 브랜드 예거르쿨트르도 지난 1일 가격을 인상했다. 샤넬과 예거르쿨트르는 올해만 세 차례 가격을 올렸다. 그래도 오픈런(매장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몰려드는 것)은 지속된다.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꺾이지 않는 명품시장은 수요·공급 법칙의 예외처럼 보인다. 인간은 가성비를 따지는 경제적 동물이지만 체면과 평판을 중시하는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는 점에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 변호사들이 고급 수입차를 타는 이유노르웨이 출신 미국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이미 120여 년 전 오늘날 명품시장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이론화했다. 그는 1899년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상류층 신사들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비싼 상품을 소비한다”고 했다.
베블런은 그 배경에 ‘서민층과 구별되려는 욕구’가 있다고 했다. 고가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비싼 상품일수록 서민은 구입하기 어렵고, 서민과 구별되려는 부자들의 욕구를 잘 충족한다. 따라서 이런 상품은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늘어난다.
이처럼 고가 상품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베블런 효과’, 그런 재화를 ‘베블런재(Veblen goods)’라고 한다. 베블런재는 가격이 내려가면 오히려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상품이 돼 버리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 행태는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중엔 고가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고가 승용차를 통해 전문직으로서 자기 능력을 의뢰인에게 어필하려는 것이다. 이 밖에 다이아몬드, 요트,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 등이 베블런재의 사례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있어 보이고 싶은 욕구’는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베블런은 부자들에게 서민과 구별되고 싶은 욕구가 있듯이 서민들에겐 ‘부자처럼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했다. 영화 대사처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체면)가 없냐”, 명품을 살 돈이 없으면 짝퉁이라도 사서 걸치겠다는 심리다. 남산 둘레길을 걸을 때도 등산복과 장비는 히말라야에 가는 것처럼 갖추고,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만 주고받더라도 최신형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것도 비슷한 심리에서 나오는 소비 행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상류층이 되고 싶은 욕구에서 고가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파노플리 효과’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밴드왜건 효과’도 있다. 밴드왜건은 서커스 행렬의 제일 앞에 있는 마차를 말한다. 서커스 행렬이 밴드왜건을 뒤따르듯이 남들이 사는 물건을 따라서 사는 소비 행태를 뜻한다. 명품 매장의 오픈런은 베블런 효과에 파노플리 효과와 밴드왜건 효과까지 합쳐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라면보다 김밥, 지하철보다 자가용열등재도 수요·공급 법칙의 예외에 해당한다. 열등재는 소득이 증가할 때 수요가 줄어드는 상품을 말한다. 소득 증가는 재화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따라서 정상적인 재화라면 소득이 증가할수록 수요가 늘어야 한다. 그러나 열등재는 소득 증가가 반대의 결과를 낸다. 베블런재와 달리 열등재는 주로 저가 상품이다. 저가 상품을 구매하던 소비자가 소득이 늘면 그보다 좋은 비싼 상품을 구입하면서 열등재의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취업준비생이 일자리를 구해 김밥을 사 먹기 시작하면 라면 구입량이 줄어든다. 이때 라면이 김밥에 대한 열등재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던 사람이 돈을 벌어 자동차를 구입해 몰고 다니면 대중교통 이용은 감소한다. 대중교통이 자가용에 대한 열등재인 것이다.
주택시장에도 베블런재와 열등재가 있다. 서울 강남 등 이른바 핵심지의 직주근접 신축 아파트는 가격이 비싸도 수요가 몰린다. 반면 지방과 서울 외곽, 비핵심지의 구축 아파트는 가격이 싸도 수요가 적다. 젊은 층에서 공공 임대주택의 인기가 낮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선택에선 베블런재가 주는 ‘간지(멋)’와 열등재를 안 쓰고 싶은 ‘가오’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